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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7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B씨

증세: 숨이 막혀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다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음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공황 장애, 불안 장애

치료 기간: 첫 달에는 1주일에 2회씩 1회 당 2시간씩 분석치료를 받다가 3개월 이후부터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었음-- 첫 1년 동안의 치료의 과정으로 치료Ⅰ에서 소개

아직도 불안이 약 10%정도 남아 있다고 다시 6개월더 치료를 받게 되었음--두 번째 6개월의 치료의 과정으로 치료 Ⅱ로써 소개되고 있다

치료의 결과: 치료 후에 한번도 공황장애는 나타나지 않았고 치료 6개월 째 공황장애는 사라졌다. 7개월부터는 불안 장애를 치료 받고 있음

이후 6개월간 치료를 더 받으면서 폐쇄 공포증이 등장하고 심장이 갑자기 뛰거나 머리가 하얗게 되는 증세, 위가 자주 위염이 오는 증세는 이후에 거의 사라졌다.

 

치료의 과정 

B씨의 공황 공격은 6개월의 치료 후에 거의 사라져 가끔 한번씩 등장할 것 같은 증세를 느낀다고 했으나 다시 재 등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머리가 텅 빈 것 같이 하얗게 되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벌떡벌떡 뛰고 호흡이 빨라지고 손과 발이 저리고 위에 자주 위산과다가 생기는 것은 없어지지 않아서 치료는 6개월 더 계속이 되었다. 신체적 증세가 올 때마다 B 씨는 두려워서 자주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죽을까바 두려워서 약간만 신체적으로 이상이 오면 과거에 가지고 있던 신경 안정제나 위에 관련된 약물을 자주 복용했다.

폐쇄 공포증의 등장 ---새로운 증세의 발견

B씨는 얼마 후에 현장 학습 참가로 동료들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자리가 없어서 봉고차의 제일 뒷편의 자리에 앉게 되었고 양쪽 옆에 두 사람의 동료가 앉아 꽉 끼여 앉아서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갑자기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차를 세우게 하고 자신이 호흡이 멈출 것 같으니까 앞 좌석의 동료와 자리를 바꾸자고 했다. 자리를 바꾼 이후에는 진정이 되었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B씨는 그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냥 공황장애가 아닌가 의심을 했으나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황공격과는 달랐다. 공황 공격은 현기증이 나면서 쓰러질 것 같고 의식을 잃을 것 같은 증세로써 늘 익숙해진 증세였으나 이번에는 그냥 숨이 막힐 것 같고 답답해서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 과거의 공황공격과는 달랐으나 자리를 바꾼 후에는 곧 그 증세가 사라졌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교장, 교감, 교무 선생님과 함께 직원들의 저녁 회식 장소에 가면서 교무 선생님이 운전하는 에쿠우스 승용차의 뒷 자리에 앉아서 가게 되었는데 옆에 교감 선생님과 부장 선생님의 사이에 끼어 앉아가게 되었을 때 또 다시 숨이 막힐 것 같고 구역질이 나오려고 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아 어쩔줄 몰라 했으나 동료들에게는 내색을 전혀내지 않고 목적지까지 가느라고 참아야 했다. 다른 일이 없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게 되었으나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두 번째 당하는 고통으로 공황공격과는 분명히 달랐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더니 얼마 전에 봉고차를 타고 가면서 가진 증세와 유사함을 알 게 되면서 그것이 폐쇄 공포증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폐쇄공포증의 원인을 찾아서

B씨의 폐쇄 공포증은 과거에는 없었다고 했다. 공황 공격이 사라지면서 최근에 다시 등장한 증세였다.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서 폐쇄 공포증에 관계되는 상처 경험을 스크린 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 기억이 떠 올랐다. 그가 초등학교 1학년-2학년 시절에 그는 형님과 아버지와 함께 시골에서 지어오던 농사일을 거들어주게 되면서 초여름에 논에 물이 부족해서 물을 끌어오기 위해서 비닐 호스를 도로 밑으로 뚫린 개구멍 크기만한 작은 수로를 논에 연결하기 위해서 이쪽 도로 끝에서 개구멍 크기의 구멍 속으로 비닐 호스를 가지고 들어가서 반대편 도로 쪽으로 가지고 나오라는 아버지의 엄명에 구멍 속으로 비닐 호스를 가지고 기어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도로 밑으로 뚫린 개구멍만한 배수로에 기어들어갔으나 중간 쯤에서 갑자기 무서움이 몰려 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구멍의 반대편은 멀리 있는 것 같았고 구멍은 몸을 움직일 수 없이 좁은 통로여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나갈 수도 없고 도로 나갈 수도 없어서 두려움에서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형님을 부르면서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형님이 놀래서 다시 도로 되돌아 나오라고 했으나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을 다시 돌려서 배수로 위로 쳐다 보았으나 천장은 깜깜하고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숨이 막히는 것 같고 이제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고 했다. 어떻게 빠져 나오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위의 이러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그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재연하게 하였다. 다시 그 장면을 상상해 보라고 했을 때 몸을 부르르 떨면서 두려워했다. 소리를 내서 울거나 그 때 목이 졸린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감정을 토해내게 하면서 B씨는 그 장면을 처음에는 두려워서 직면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계속 그 장면의 재등장에 익숙해져 가면서 마음 속에 갇힌 감정들이 빠져나가면서 몸의 안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에 다시 비슷한 상황을 치료실에서 재연해보았다. 치료자가 B씨의 의자에 끼어앉으면서 몸을 밀착시키면서 다시 폐쇄 공포증과 유사한 증세를 느끼는지 시도를 해보았다. 그리고 폐쇄 공포증은 어린 시절의 배수로에 갇힌 사건에서 오는 것임을 알 게 하고 놀라지 않도록 인식을 하도록 했다. 이후에 그 증세는 다시 재 등장하지 않았다.

머리가 갑자기 하얗게 텅 비는 증세

B씨는 한번씩 갑자기 두통이 오는 것처럼 머리가 아프면서 머리 속의 생각이 텅 비는 것이 느껴지며 이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두려워했다. 이부분을 치료 하면서 B씨가 평소에 어떤 생각을 많이 하는지를 분석하게 되었다. 그는 늘 생각에 잠긴다고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항상 머리 속이 복잡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보라고 했드니 신문이나 방송 뉴스에게 어떤 피살자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자신이 바로 그 피해자처럼 느껴져서 그 피해자가 받았을 고통을 스스로 느껴본다는 것이었다. 몇 개월 전에 젊은 남녀가 데이트로 조그만 고기 잡이 어선을 돈을 주고 빌려서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그 어선의 주인이 강간자로 돌변해서 그 남자를 바다에 밀어넣어 죽이고 그 여성을 강간한 후에 바다에 떠밀어 살해를 했다는 보도에 죽은 젊은이들이 물 속에 잠겼을 때 얼마나 답답해 하면서 죽어갔을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면서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이었다. 또 어린이 유괴범이 유치원 아동을 유괴해서 돈을 요구하면서 살해한 후에 붙잡힌 사건에서 그 어린이가 숨이 막혀 질식할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하며 스스로 괴로워한다고 했다. B씨는 이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루에 적어도 2번-3번씩 직장에서 집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못 견디겠다고 전화를 해 왔으나 공황 공격이 사라진 이후에는 이제 전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 생활 5년 정도 되면서 더 이상 참다 못한 부인이 울면서 B씨의 전화를 받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에 너무나 괴로웠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씩 B씨는 한번씩 몸에 이상이 오는 증세에 고통스러워하면서 늘 머리 속에는 "죽을지도 모른다" 불안한 생각들이 생기고 자주 "이제 나 죽네"라고 입밖에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고 했다.

B씨가 치료를 받은지 약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부인이 두 번째 자녀인 딸을 출산하게 되었다. 출산 후에 병원에서 신생아가 면역 기능이 없는 것 같으니 몇 주일간 병원에 입원을 해서 면역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체크를 해보자고 한다고 했다. 그 당시에 B씨는 직장에서 건강 종합 검진을 받은 결과가 나왔고 신체적 이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뛰고 손발이 저리고 호흡을 하기 어려운 증세가 느껴지는 바람에 병원에 심장, 폐의 정밀 검사를 원했고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통보 받았으나 위에 신체적 증세는 자주 등장을 했고 B씨는 이것이 다시 공황 공격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늘 불안해 했다.

B씨는 여름 휴가를 약 2주일간 맞아서 처가댁과 시골에 있는 부모님 댁에 들리게 되었고 돌아온 후에 신체적 증세가 한동안 조용했던 것들이 다시 재 등장하면서 손발이 떨리고 가슴이 뛰는 증세가 자주 등장한다며 공황 장애의 재발을 염려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부장 선생님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3개월간 하는 통에 B씨가 그 부장 선생님의 업무를 대신해서 맡게 되었고 이후에 위가 자주 위염이 생기고 전에 먹고 있던 위장 약물을 자주 복용한다고 했다. 늘 불안을 달고 다니면서 하소연을 했다.

 

이론적 근거

B씨가 왜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는데 자주 신체적 증세를 호소하는가?를 분석하면서 치료자는 B씨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심한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자녀들에게 불안을 심어주었음을 알 게 되었다. 지금까지 B씨는 할머니가 집안을 일으킨 구세주처럼 인식되어있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할머니는 B씨의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대(大) 가족으로 살면서 몇 년 전에 90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시집을 오면서 귀가 약간 안들린다는 문제 때문에 어머니를 구박했고 살림은 할머니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살아왔음이 밝혀졌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경제권을 주지 않았고 모든 집안 일들은 할머니가 좌지우지 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자들을 키우는데 직접 간섭을 해서 정작 B씨의 형제들에게는 어머니는 뒤전으로 밀려나있었고 할머니가 어머니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아버지는 끝없이 어머니와 갈등을 일으켰다. 술과 도박을 일삼아서 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고 할아버지도 할머니에게 꼼짝 못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농번기가 되면 자주 막걸리를 마시면서 일을 하다가 저녁 때가 되면 술에 취해 마루에 앉아서 손자들에게 "너희 할머니를 찾아오라, 내가 할 말이 있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쳤고 모든 식구들이 할아버지를 피해서 동네를 돌면서 할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려 할아버지가 잠이 들면 집안으로 들어와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면 11시-12시가 되는 일이 빈번했다고 했다. 농한기 때 아버지가 도박과 술로 집을 비우면 할머니는 잠자는 손자들을 깨워서 앞 세우고 아버지가 도박을 하는 장소를 찾아 다녔다고 했다. 어떤 집에서 도박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내면 할머니는 손자를 아버지 방에 내 보내어서 그것을 보게 하고 아버지를 끌어내 오도록 시켰다고 했다. 이런 일들은 늘 B씨가 많이 했다고 했다.

할머니가 늘 불안해서 몸이 아프면 미신을 믿어서 죽은 귀신이 집안을 해코지 한다면서 시골 집의 상량 (나무로 집을 지을 때 서까리들이 한 곳에 모이게 받쳐주는 집의 핵심 뼈대)을 여러번 교체하는 바람에 비만 오면 집에 물이 새던 일과 집의 대문을 여러번 바꾸는 사람에 아버지가 경운기 운전을 하다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다가 교통 사고를 당한일 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위 암에 걸려서 3년 동안 죽어갈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고통속에서 그대로 내 버려 둔 것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우리 집에서 할머니가 먼저 죽어야 한다"면서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했다. 한번은 집에서 키우던 소를 아버지가 소 시장에서 팔아 돈을 가지고 왔는데 할머니가 소를 매매한 대금이 너무 적다면서 다시 그 돈을 되돌려 주고 소를 찾아오게 해서 아버지를 분노하게 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사람의 설득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40대 중반 이었는데도 할머니는 아버지의 자손심이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그 돈을 되돌려 주고 계약을 파기하고 소를 되찾아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망신을 당했고 아버지의 자존심은 먹칠을 한 결과가 되었다.

시골에 살았던 아버지는 동료들과 상조계를 모아서 서로 길, 흉사에 서로돕는 계모임에 가입해있었다. 동료들의 집에 부모들이 사망하면 가서 장례를 도와주는 계모임이었는데 할머니는 죽은 사람 집에 가면 귀신이 붙어 온다면서 아버지를 가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가서 도와주지 않으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누가 와서 장례식을 도와주겠느냐고 하소연을 했고 동료 계원들에게 배신을 당한다면서 참가하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끝내 그 집에 가지 못하게했고 아버비는 분노해서 술을 마시고 할머니와 싸우는 일이 허다했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사망 이후에 할머니는 할아버지 무덮 옆에 큰 포프라 나무가 세 그루 있어서 그 나무의 그들이 죽은 할아버지 무덤을 가려서 할아버지가 영혼이 가족들을 해코지 한다고 하면서 한 밤중에 잠을 자는 손자인 B씨와 형님을 깨워서 동네 사람들이 모르게 살금살금 그 나무를 밤새도록 톱질을 해서 기차가 지나갈 시간에 그 나무를 넘어뜨리게 했다는 과거의 고통스러움을 호소했다.

B씨는 위로 6살이 많은 형님이 계시고 2살 많은 둘 째 형님이 계시고 2살 아래인 남동생이 있고 2살 아래는 막내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후 50대 후반에 뇌출혈과 사망했고 할머니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사망 한 후에도 온 가족들을 이래라 저래라 좌지우지 하면서 장수해서 90세가 되어서 3년 전에 사망했다고 했다. 위의 형님과 아래로 3명의 남동생들은 지금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고 모두가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음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큰 형님은 고등학교 시절에 외지에서 공부를 한다고 집을 떠나있었서 할머니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았음이 밝혀졌다. 큰 형님은 그 당시에 대학에 진학해서 1학년을 다니가가 자퇴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까지 공무원으로 결혼에서 고향의 인근 도시에서 살고 있고 나머지 형제들은 B씨를 제외하고는 고등학교나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정도로 살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B씨는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일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고 고등학교는 외지에서 집을 나와서 자취를 했다고 했다. 방학 때는 할머니의 등살에 집에 들어가기 싫었고 군 복무 시에는 휴가를 오면 집에 있기 싫어서 아예 책을 싸들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고 했다. B씨는 이후에 법대에 진학해서 졸업을 했고 고시 공부를 몇 년 하다가 교사가 되어 지금의 부인과 결혼해서 5살 된 아들과 몇 개월 전에 태어난 딸이 있었다.

치료의 단계

B씨는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가족들에게 심어준 불안함에 짖눌려서 살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B씨는 치료를 받기 전에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아버지에 대한 인식을 대단히 나빠있었다. 도박과 술로 세상을 살아왔고 늘 할머니에게 대들고 갈등을 일으키면서 가족들에게 고통만 안겨주었다고 가족 구성원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구세주로 우리 가문을 일으켜 세운 사람으로 인식되어있었다. 어린 시절의 분석의 과정에서 지금 현재의 가족들의 고통들은 모두가 할머니가 만들어낸 것임을 알 게 되면서 B씨의 분노와 적대 감정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늘 학대를 받았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친정에 어머니 자신의 엄마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에 B씨가 그 때 5세-6세 쯤에 기억이 나는 것은 어머니를 따라서 외할머니 산소에 가서 통곡하고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해 냈다. 어머니는 장녀였고 큰 외삼촌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누나를 학대하고 시집 살이를 너무 많이 시킨다고 폭행을 한 사건을 기억해 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어머니가 낳은 자식을 자기 자식처럼 키우지 못하고 할머니가 대부분 양육을 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대가족들의 빨래와 집안일을 도맡아서 해온 그야 말로 요즈음에 말하는 가정부와 같았다고 회상을 하면서 할머니에게 분기탱천했다. 어머니의 나이가 50대 중반 일 때도 할머니는 어머니가 잘못한다고 어머니의 몸을 꼬집는 할머니를 보고 "왜 엄마를 꼬집습니까? 말로 하세요"라고 항의를 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고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B씨의 마음 속에 쌓인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도록 하는데 치료의 초점을 맞추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서 생활을 하면서 약 25년 동안에 마음 속에 쌓인 상처를 치료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한번도 하소연하거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부인에게 조차도 이런 고통스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B씨는 이제 중년기를 들어서고 있었다. 마음 속에 목이 졸려 질식에 있는 어린 시절의 자아를 끄집어 내어서 옛날의 그 고통들을 재연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고통 속에는 할머니에 대한 극도의 분노들이 쌓여있었고 그 분노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B씨는 지금까지 할머니가 늘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내가 아니었으면 이 집안은 벌써 망했을 것이다."라는 말과 할머니가 시키는 일을 하기 싫어하면 할머니는 늘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집이 망해도 좋겠느냐?" "너희들이 잘 살 게 하기 위해서 너희들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거역하거나 싫어하는 내색을 할 수 없었고 또 실제로 할머니가 우리 집의 구세주라고 믿고 지금까지 왔으나 이제 우리 집의 모든 문제는 할머니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고 노발대발했다.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토해내게 했다.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말로써 이야기하도록 했다. 할머니의 불안증이 가족들 모두에게 대물림이 되어 온 가족들이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B씨는 지금까지 그 불안 증세 때문에 중년기 시작되는 시기인데도 죽음 공포에 휩싸여 있음을 알 게 되면서 그 원인이 할머니의 불안증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 게 된 것이다.

 

치료의 결과

 B씨는 가끔씩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목이 뻐근하거나 복부에 통증이 오거나 머리에 두통이 오거나 하는 증세들이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계속해서 토해내는 분노의 감정이 몸에 쌓이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직장에서나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약간의 스트레스만 받아도 B씨는 신체에 이상이 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B씨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의 불안증에 대물림이 되었다. 쉽게 말해서 할머니가 불안함을 B씨에게 심어준 것이었다. B씨의 기억에는 어린 시절인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학교에서 코미디나 개그맨의 기질이 있어서 학급에 행사가 있으면 언제나 B씨가 앞에 나서서 웃기거나 유머로써 학급을 리더해 나가서 동료들로부터 커서 연예인이 될 소질을 타고 났다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또 B씨 자신도 커서 연예인이 되겠다고 했을 정도로 외향적 성격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B씨는 점점 내성적으로 변해갔다고 회상했다. 그 원인은 할아버지의 위암으로 인한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였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몸의 감각으로 지각하면서 할아버지의 아픔을 대신하려고 했던 것이다. 고로 B씨의 ego(기능적 자아)는 약해져갔고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B씨는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6학년때 오줌을 싸는 야뇨증이 있었다고 했다. 그 이전에는 야뇨증이 없었다고 했다. 또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돈을 훔치는 도벽이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증세 행동은 B씨가 받은 불안함과 두려움, 공포를 마음 속에 억압해서 목이 졸려 내면에 갇혀 있었던 결과로 나타난 증세임을 이제 B씨도 알 게 되었다.

 B씨는 어른이 된 지금에도 조그만 스트레스를 마음으로 완화 시키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습관화된 행동으로 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직장에서 조그만 스트레스나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또는 형제들 사이에서 오는 조그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몸이 그것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목이 뻐끈 하거나 어깨가 저리거나 복통이 오거나 위가 쓰리거나 손발이 절리거나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현상들은 몸에 이상이 있기 직전에 있었던 스트레스를 분석해 나가면서 그 스트레스를 몸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밝혀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B씨는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몸으로 대응해서 몸으로 표현하지 않고 이것을 마음으로 완화 시켜 대처에 나갈 수 있도록 자신감을 높이고 자신이 스트레스를 덜 받게 조정해 나가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점점 신체적 증세들은 감소되어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