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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심하게 불안한 32세의 남자 Z씨

증세:불안해서 물건을 사기 어렵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고 특히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 머리 속에 어린 시절에 상처 받은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새벽 2시-3시까지 잠을 잘 잘 수가 없음(처음 인터뷰 시에).  최근에 지난 주일에 찍은 단체 사진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책 속에다 꽂아 놓아 보이지 않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하소연

접촉: 치료자의 저서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보고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접촉한 후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겠다고 연락이 옴

진단명: 심한 불안장애, 대인공포증, 자아가 너무 약한 자아 장애(첫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의 그의 진단)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 2시간씩 5년 6개월간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자아가 점점 자라나서 자신감이 증가하고 있고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음, 심한 불안장애는 거의 해결이 되었고 밤에 잠을 자는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고 대인공포증은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2년 전부터 xxx 동양화 학원에 1주일에 1회 3시간씩 열심히 동양화를 배우고 있고 동료들과의 관계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최근에 등장한 결혼 문제, 최근에 찍은 단체 사진을 보고 자신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 책 갈피 속에 넣어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 유사한 자신의 모습을 떠 올리고 이 문제를 분석해서 치료를 해 나가고 있음.

 

치료의 과정

 Z씨는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은지 5년6 개월이 시작되고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이다. 그가 치료자에게 왔을 때 첫 치료 계약서를 보니까 2007년 4월 6일로 첫 6개월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치료자에게 장기 치료를 받고 있는 두 번째의 사람이다. 그가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의 치료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치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5년 전의 Z씨를 간단하게 회고해 보면 그는 처음 치료자에게 찾아 왔을 때 자살 직전에 있었다. 그는 유치원, 초, 중, 고등 학교를 졸업하면서 대인관계 문제로 늘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받아왔었다고 털어 놓았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시에 그는 99cm로 키와 체구가 작아서 유치원 아이가 부모님에게 따라온 것이 아닌가? 의심과 놀림을 받았고 초등학교 4학년 시점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들이 Z씨가 4학년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 Z씨의 가방을 열어 보고 책을 확인을 했던 적도 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를 보고 늘 "꼬마"라고 놀리는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늘 괴로움에 고통스러원 했다. 그는 치료자에게 오기 직전에 삶이 너무 괴로워서 자살을 하려고 결심하고 있던 중에 서점에서 우연히 치료자가 쓴 저서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사서 보고 치료자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하소연을 한 것이 기억이 생생하다.

 그의 삶의 역사를 분석해 나가면서 그의 부모님은 두 사람다 불안장애자 들이었다. 아버지는 너무 집안을 깨끗이 하는 결백증을 가지고 있었고(정신 의학적 전문 용어로는 강박 행동 장애), 어머니는 심한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심한 불안증은 3명의 여동생들 한데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분석을 하면서 알 게 되었다. Z 씨의 큰 여동생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고 초등학교 3학년과 초등학교 1학년의 아들을 두고 있었고 두 번째 여동생은 역시 초등학교 교사로 3년 전에 결혼하여 3살된 딸을 두고 있었고 그리고 막내 여동생은 1년 전에 그녀가 다니는 컴퓨터 그래픽 회사에 다니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해서 두 사람이 지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나 자녀는 아직 없었다. 여동생들은 부모님의 과도한 간섭이나 부당한 강압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자기 주장을 가진 사람들로써 부모님의 부당한 요구에 반대해서 따르지 않았고 자신들의 소신대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불안함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고 독립을 해서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Z씨는 치료자의 권유로 치료를 시작한지 1년 정도의 시즘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나와서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Z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화 그리기에 취미가 있음을 발견하고 만화를 전공하겠다고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부모님은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는 "밥을 먹고 살 수가 없다" 고 강압을 해서 그의 소망을 포기하려고 끝임없는 시도를 했으나 그는 결코 그의 꿈을 포기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10년 동안 꾸준히 만화를 그리면서 지금까지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으나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고 일자리는 가지지 못하고 있으나 그는 회사에 취직을 해서 살아가기 보다는 일찍히 프리랜스(free lance--상사나 사장으로부터 구속, 억압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삶을 유지해 나가는 전문직 종사자를 말함)로 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이루스트레인션(illustration)의 작가(삽화를 그리는 전문가)로써 작품의 활동을 맹렬하게 습작 활동을 지금고 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취미, 개성, 특기 적성을 부모님에게 수십차례 이야기를 할 때 마다 특별히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꿈이 만화가가 되는 것이었으나 가족의 생계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하고 세무사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그가 포기한 꿈을 아들이 이루도록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는 부모님의 강요에 못이겨서 여러번 만화 그리기를 포기하고 여러 개의 직업을 전전을 했다. 사회 복지사를 약 2년 동안 공부를 해서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을 시점에서 한 학기를 남겨 놓고 실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그 이후에 그가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땄으나 보기처럼 쉬운 일이 아닙을 깨닫고 치료자의 지원을 얻어서 본래 그의 꿈인 삽화가, 만화가가 되는 길에 되돌아갔다. 사회 복지사를 공부하기 이전에 만화를 그리는 회사에 일자리를 얻어서 1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으나 그는 그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그 이후에는 직장 생활을 포기를 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로 결심을 한 것도 그 시점이었다. 그는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서 3개월간 장애인 구직 센터로 찾아가서 장애들을 고용해주는 인공 눈알(눈동자를) 만드는 개인 회사에 3개월간 일을 했었으나 그만 두게 되었고 만화, 삽화 그림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장애인 고용 센터로 찾아가게 된 사연은 이야기가 길었다. 그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신체가 왜소하고 키가 작아서 늘 동료들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땅 꼬마"라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그는 성장 호르몬 주사를 규칙적으로 지금까지 맞고 있었다.지금은 그의 키는 평균을 훌쩍 넘어서 176cm 정도로서 키의 문제는 성장 호르몬의 주사로 해결이 된 셈이었다. 그가 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을 할 무렵게 어머니는 장애인들을 위한 특차 시험이 있다고 Z 군을 강제로 끌고 장애인 신체 검사소로 찾아가서 다짜고짜로 Z 군이 장애자이나 등록해 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 신체 검사관은 Z 군이 장애자가 아니라고 했으나 어머니가 강제로 그녀의 아들 Z 군은 신체가 왜소하고 키가 작은 것을 내 세우면서 장애자라고 우격다짐을 했다. 할 수 없이 그 신체 검사관은 Z 군을 장애인으로 등록을 해주었고 그는 장애인들의 시험으로 전통이 있는 xxx 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Z는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경영학에도 흥미가 없었다.그 대학 만화 동아리에 들어갔으나 그 당시 만화 동아리 선배들은 그에게 데모, 운동권의 만화를 그리기를 강요 했고 그는 만화 동아리에서 탈퇴해서 그는 여름 방학 때 xxx 만화 학원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그가 원하는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후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만화 활동을 계속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몇 년간을 만화 학원 출신들로 동아리를 만들어서 열심히 참가를 했다. 그가 이름 있는 xxx 대학 경영학과에 들어간 것은 그의 의견을 일체 무시하고 부모님의 최면 즉 그들의 아들이 xxx 대학 경영학과에 다닌다는 부모님의 최면 때문에 그 학교를 가고 싶지 않았지만 No라고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고 Z 씨의 인생에서 xxx 대학 졸업장은 의미가 없고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실토를 했다. 그것은 순전히 부모님의 명예, 최면 때문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는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전에는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50%: 50%로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듣고 나서 치료자는 깜짝 놀랬다. 왜냐하면 그는 결혼을 한 부인이 그의 엄마를 닮게 되면 사망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엄마처럼 이것, 저것을 간섭하는 사람이 되거나 일일이 자신의 하는 만화, 삽화 그림을 그리는 일에 제동을 걸거나 혹은 돈을 벌어 오라고 강요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여성들에 대한 두려움,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엄마나 여동생 특히 둘 째 여동생을 닮은 여성들이 눈에 띄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씩씩거리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꼴 보기가 싫어진다고 하소연을 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기 전에 몇 년 전에 그의 부모님은 연변 동포 아가씨를 소개해 줄터이니 결혼을 하려고 강압을 했다. 이후에 신문에서 외국에서 데려온 신부들이 한국에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린뒤에 돈과 금품을 털어서 도망을 간다는 기사를 보고 연변 처녀들과 결혼 이야기는 쑥 들어가 버렸다고 회고를 했다. 얼마 후에 아버지가 Z 씨에게 이웃 가계에서 일을 하는 장애인 아가씨를 소개시켜줄 것이니 한번 만나보아라고 강압을 했다. 그는 강력하게 반대를 했다. 그 이웃 가계에서 일을 하는 아가씨는 말이 없는 대인관계가 전혀 되지 않고 상대방에게 눈도 잘 맞추지 못하는 아가씨로 지금까지 남자들과 대인관계를 하지 못해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Z는 노발대발 했으나 마음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부모님에게 그 분노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는 Z씨 자신도 대인관계가 잘 되지 않는데 비슷한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 부부 갈등 문제가 불을 보듯이 뻔 한데 그리고 왜 하필 장애자들을 배우자로 이야기를 하는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분노를 부모님에게 말로써 표현을 할 수는 없었다.

 몇 주일 전에 Z 씨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xxx 농협에서 노총각들의 초대 파티에 오라는 초대장을 받았다. 어떻게 그가 신청도 하지 않는 그의 전화 번호를 알았을까? 곰곰히 찾아보았더나 그의 어머니의 전화 번호가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광고를 보고 Z씨의 전화 번호를 제공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게 한 것임을 알 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참가를 하는 것을 거부했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남녀들이 만나는 것 자체도 싫어할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그러한 방식에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의견을 물어 보지도 않고 일반적으로 언제나 어머니는 강압적으로 그렇게 해 왔던 것에 대한 분노였다. 어머니는 그것이 Z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Z씨의 자아를 말살하는 자아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유아기적인 발상이라는 것에 분기탱천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집에 와서 같이 식사를 하자, 반찬을 가지고 가라, 혹은 왜 오즈음은 전화 조차 없는가? 라는 말로써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시키려고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러한 간섭을 받으면 며칠씩 잠이 오지 않고 내 자신을 달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어머니의 접촉 시도를 나의 자아를 흔들어 놓아서 나를 고통스럽게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을 어머니는 모르고 계십니다. 나를 도와주려고 하신다면 제만 가만히 저를 내 버려두십시오" 그는 그의 내면에서 나오는 그 자신의 자아의 소리에 엄마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도록 하려고 치료자 한에서 자기 표현을 할 수 는 있었으나 아직도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직접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후에도 부모님은 여동생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Z씨에게는 하나에서 열까지 간섭을 했다. 고시방으로 이사를 한지 4년이 넘어가는데도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제사 때나 명절 때나 Z씨가 집에 들어가면 늘 하는 정해진 고정된 대화 내용이 "언제 집에 들어 올 것이냐?"라는 물음이었다. 집에 들어가면 "나는 질식해 죽을 것이니다. 나는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의 간섭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과 같이 살 게 된다면 그것은 나를 보고 죽으라는 말과 같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지만 그는 부모님에게 그 말을 표현을 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는 부모님에게 "최근에 병원에서 정기 신체 검사 결과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그리고 갑상선 호르몬이 정상 수치를 회복을 했고 섹스 호로몬도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그의 성장 호르몬과 섹스 호르몬의 담당(그는 두 개의 호르몬을 계속해서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이 깜짝 놀랬고 그리고 그의 몸무게가 8kg이나 늘었다고 귀뜸해 주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체격이 왜소해서 식사 때마다 부모님이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다. 체격이 좋아진다고 강압을 하는 바람에 식사 때만 되면 고역이었다고 치료자에게 하소현을 해 왔기 때문에 치료자가 잘 잘고 있었다. 어떤 때는 위에 음식이 가득 차서 더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화장실에 가서 토해 낸 다음에 다시 밥상에 가서 식사를 계속하는 곤욕을 치렀다고 회고를 했다.그러나 그의 몸무게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서 나와서 독립해서 자신의 생활을 고시방에서 시작을 했을 때 부모님은 "네가 1달내지 2달 안에 다시 집으로 들어올 것이다"라고 장담을 했다. 그러나 Z 치료자에게 도움을 받아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식사 매뉴를 영양식으로 잘 짜서 음식을 해 먹기 때문에 그의 건강은 오히려 더 좋아지고 몸무게가 늘어났다고 기뻐했다. 그것이 그가 집을 나옴으로써 부모님으로부터 심리적 해방, 자유로움과 마음이 편안해짐으로써 그가 얻는 건강이었음을 그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가을에 고향에서 시제(조상들의 제사를 지내는 추수 감사 제사)에 몇 년 동안 참석을 하지 못해서 부모님을 따라갔으나 결국 실망을 늘어 놓았다. 부모님은 장손으로 앞으로 조상들의 제사를 Z씨가 물어 받아서 이어가야 하고 그리고 그가 빨리 결혼을 해서 제사를 지낼 자식을 낳아서 부모님이 죽고 나서 제사밥을 얻어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고 안달복달을 했다. 그는 시골 고향에 내려갔으나 모두가 어른들이고 그의 나이 또래의 친척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옆에서 Z 씨에게 끝없이 감놓아라 배놓아라 간섭을 했고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간섭을 해서 목일 졸리는 숨이 막히는 질식을 느꼈다고 실토를 했다. 부모님에게 마음 속으로는 "어머니는 나를 초등학교 학생으로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30대로 이제 어른이가 아니고 어릅니다. 제발 나를 유치원 학생으로 취급하지 말아 주세요. 어머니는 나에게 성장을 하지 말고 유치원 학생으로 남아 있어라 하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내 자아에 모독입니다. 나 자아의 존재를 무시하고 나를 의존하고 어린이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그의 내면의 목소리를 직접 부모님에게 아직도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근에 국회 의원 선거 때 그리고 서울 시장 선거 때 부모님이 Z씨에게 한 행동을 분섟하면서 치료자는 깜짝 놀랐다.매번 선거 때가 되면 그의 주민 등록지가 아직도 부모님 집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Z씨는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 동 사무실에 투토를 하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 때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 xxx 당을 찍어라, xxx국회 의원을 찍어야한다. xxx 서울 시장 후보자를 찍어라"라고 강압을 받고 있었다. 얼마 전에 큰 여동생이 Z 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번 국회 의원 선거에서 오빠는 누구를 찍을 것인지?를 물어 왔고 아직 결정이 된 것이 없다고 하니 xxx 당을 찍어야 한다고 강압을 했고 그 다음 날에 아버지가 Z 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번에 zzz를 찍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듣고 큰 여동생이 zz 후보자가 아니고 xx 후보자를 찍어야 한다고 전화가 왔드라고 대답을 했을 때 아버지는 xxx를 찍어면 사표 죽은 표가 된다고 그 사람을 찍으면 안 된다고 강압을 했다. Z 씨는 마음 속에서 "내가 어린이도 아니고 30대의 어른인데 아직도 부모님 그리고 큰 여동생이 내가 후보자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xxx 당을 찍어라 xxx 후보자를 찍어라라고 강압을 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고 내가 선택권을 행사 할 수 없는 미성년자 혹은 장애인처럼 취급을 하는 것에 참을 수가 없는 분노, 적대 감정을 느낀다고 분노를 말로써 표현을 하게 했으나 아직도 부모님에게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최근에 큰 여동생이 엄마를 닮아 간다고 분노했다. 몇 개월 전에 큰 여동생이 자신이 학교 일찍이어서 학교에 근무를 하러 가는데 큰 아돌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 두 명의 조카를 돌보아 달라고 요청을 해서 돌보아준 적이 있는데 그것을 분석하면서 대노 했다. 이유는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사람으로 보고 있어서 할 일이 없으니 그녀의 자녀들을 돌보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늘 그에게 조차를 돌보아 주라는 명령으로 그를 할 일이 없이 하루 종일 놀고 있는 사람으로 취급을 해 왔다는 것이었다. 조카들이 나이가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이라면 그들은 옆에서 부모님이 돌보아주지 않아도 피아노 선생님이 피아로를 가르치러 집에 올 때 30 대의 외삼촌이 옆에서 지키고 돌보아주려고 서 있어야 한다는 그 발상이 엄마의 발상과 닮았다고 분노 했다. 이번 선거 때도 어머니는 여동생의 아들 즉 큰 조카가 어머니가 둘 째 딸의 자녀가 몸이 아파서 유아원에 있는데 돌보아주러 가니 Z씨가 와서 돌보아 주라는 명령에 이번에는 단호하게 No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내가 30대이고 이제 나도 내 할 일이 태산인데 다 큰 3학년 조카에게 옆에서 서서 지켜 보면서 돌보아주라는 말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너무 그렇게 의존적으로 자녀를 키우면 안 된다고 여동생에게 말씀드리세요. 정말로 조카 옆에 누가 있어서 돌보아 주어야 한다면 그의 아버지나 여동생이 직장에서 조퇴를 하루 해서 그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하라고 하십시오"라고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그는 2년 동안 xx  동양화 학원에서 토요일에 야외 스켓치에 가게 되었을 때 단체 사진을 찍은 사진을 유대폰으로 전송이되어 온 것을 보고 자신의 모습이 보기 싫어서 사진을 감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랬다고 실토를 했다. 그는 그의 모습을 보고 "너무 못생기고 너무 무능해 보이고 일자리가 없이 놀고 있는 실직자로 보이고 병든 닭처럼 기운이 없어 보이고 에너지가 고갈되어보이는 모습이 싫었다"고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Z씨의 자아 이미지가 너무 비관적이고 비판적이고 우울함을 지적을 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Z씨의 자아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꼼꼼해 생각해 보도록 했다. 그는 즉각 그의 어어머니 아버지가 그를 보는 시각이 견해가 바로 그가 그 자신을 보고 있는 자아 이미지 임을 분석을 해 낼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감정 표현을 치료가 5년이 지나가면서 이제 점점 자신감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표현을 할 수 있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불안장애는 거의 사라졌다. 대인공포증도 동료들과 어울리는데 큰 어려움이 없이 성당의 동료들의 모임에서 3박 4일 혹은 2박 3일 코스로 피정(캐토릭에서 성지 순례 답사, 혹은 성도들의 야외 모임)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큰 어려움은 없어보였다.  그는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자신의 건강, 일상 생활은 경제적인 것을 제와하면 독립해서 혼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혼자서 살아가는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건강은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보다 더 좋아졌고 몸무게도 늘어났고 그리고 얼굴 표정이 밝아지고 신체적 건강도 좋아 졌다고 지난 주일에 그의 큰 여동생과 어머니가 한 말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부모님에게 그의 감정을 자신있게 표현을 하는데는 그의 자아가 좀 더 자라야 함을 그가 알고 있었다.

 지난 치료 회기 시간에는 그는 그날 아침에 그가 꾼 꿈을 이야기를 하면서 분석을 요구를 했다.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가 초등학교 고학년 쯤 되어보이는 교실에서 동무들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의 담임 선생님은 그의 어머니였다(참고고 그의 어머니는 IMF 직전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그의 어머니는 한 학급 동료가 어떤 특정 분야를 하는데 아낌없는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열심히 계속하면 나중에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러한 특기를 찾은 것에 극구 칭찬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Z 군이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취미, 흥미, 호기심은 극구 칭찬을 하면서 어머니의 아들인 나의 취미, 흥미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게 할 수 있느냐?"라고 항의를 하는 꿈이었다. 그 꿈에 대해서 생각이 나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보라는 치료자의 제시에 그는 마음 속에 쌓아 놓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 낼 수 있었다. 그의 불평들과 심리적 상처들은 5년 동안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이 두 개가 기억의 회복으로 나타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나,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자녀들의 흥미, 새로운 취미 등을 극구 칭찬을 하면서 정작 아들인 Z 군에게는 그가 초등학교 때부터 새로운 신기한 흥미들을 비난하고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질책을 한 것을 기억을 했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의 생일날에 어머니에게 "현미경"을 하나 사 달라고 요청을 했고 어머니는 간이 현미경(초등학교 학생용)을 하나 사 주었다. 그는 어머니가 더 이상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약국에 가서 몇 개의 시험관(비꺼)과 알콜을 조금 사왔다.그리고 어머니의 빈 화장품 크림 통에 알콜을 넣고 그리고 실를 뭉쳐서 심지를 넣어서 알콜 램프를 만들어 불을 붙이고 실험을 해 보았다. 그는 신기하고 호기심으로 미래에 과학자가 되겠다고 열심히 했는데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노발대발해서 어디에서 그 돈이 나왔느냐? 땅을 파 보아라 100원짜기 동전이 한푼이라도 나오느냐?고 야단를 맞고 그것을 모두 폐기를 시킨 것을 기억해 냈다.

 두 번째 기억은 그의 이웃에 사는 아주머니가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의  아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쓸데없는 인터넷 게임에 매달린다는 하소연이었다. 어머니는 그 아주머니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말로써 그래도 아들이 그러한 흥미를 가진 것이 대견한 일이 아니냐!라고 격려와 칭찬을 하는 것을 들어면서 어머니는 한번도 나에게 그러한 칭찬과 격려를 해 준 적이 없었다고 마음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세 번째는 그가 초등하교 1학년 때 옥상에 올라가서 참새를 잡아보냈다고 가마니를 접어서 나무 막대기를 받쳐서 옆으로 비스듬히 세워두고 그 가마니 앞에 쌀을 뿌려 놓고 그 막대에 줄을 매달아서 옥상의 보이지 않는 곳에 그가 숨어있다가 참새가 쌀을 쪼아 먹으려고 그 가마니 밑으로 가면 줄을 잡아 당겨서 참새를 덮치겠다는 발상을 해서 옥상에게 실험을 하다가 어머니에게 적발되어 노발대발 해서 그를 처벌하고 야단을 쳤던 기억을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한번 아버지에게 항의를 했다. 왜 어머니,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 한데서 격려와 칭찬을 그렇게 하면서 정작 아들인 자신에게는 야단, 비난만 하느냐?라고 항의를 했을 때 부모님의 대답을 한결 같이 "그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시도를 해서 성공을 하든지 실패를 하든지 하는 것은 우리와 관계가 없지만 너는 우리 가족이기 때문에 한번 실패를 하면 그 만큼 큰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아예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 아닌가?"라고 대답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네 번째 그는 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으면서 책상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때마다 어머니는 "왜 너는 매일 같이 방구석에 처 박혀 있느냐? 다른 아이들은 모두밖에 나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힘차게 뛰어 노는데 너는 몸이 약해서 집에만 처밖혀 있으니 항상 허약한 것이 아닌가?" 그는 그와 같은 말들을 부모님으로부터 수 없이 귀가 따갑도록 많이 들었다고 분노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머니는 학기 초가 되면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우리 아이는 몸이 허약하니까 체육 시간에 운동을 시키기 말고 참관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그는 체육 시간만 되면 다른 아이들과 뛰어 놀고 싶어도 옆에서 구경만 하는 나약한 어린이가 되었다. 한번은 어머니와 여동생들과 함께 인근 학교 운동장에 놀러 갔다가 학교 운동장 옆에 있는 장글짐을 보고 그곳에 올라가려고 했더니 어머미가 대경실색을 하면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곳에 올라가려고 하느냐?라고 노발대발해서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고 분노했다. 대신에 여동생들은 마음 대로 장글짐에 올라가게 내 버려두었다고 분노했다. 여름에 가족들이 휴가를 가서 시내 가에 갔을 때 동생들과 다른 아이들은 물에 들어가서 잘도 노는데 Z은 물을 겁내서 두려워하고 물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니까 어머니는 대뜸 "너는 왜 물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영을하지 못하느냐?"고 질책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분노했다.

 치료에서는 그러한 분노와 자기 표현을 하도록 했다. 어머니에게 항의를 표현을 하게 했다. "어머니 몸이 허약하면 운동을 하도록 해서 몸을 튼튼하게 해야 하는데 왜 나를 운동을 하지 못하게 막아 버렸나요? 수영을 하지 못하면 수영 장에 데리고 가서 수영 코치에게 수영을 배우게 해야 하는데 엄마는 나를 물가에도 가지 못하고 하고 수영을 배우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과학에 호기심 때문에 실험을 해 보려고 노력을 하면 어머니께서 적극적으로 나에게 용기와 지원을 해서 해 보도록 옆에서 격려를 해야 하는데 어머니는 반대로 해 놓고 내가 정작 잘 하지 못하면 나를 비난하고 질책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한 것은 나를 사랑해서 나를 위해서 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정작 나를 사랑해서 한 것이 아니고 어머니의 불안 때문에 아버지의 불안 때문에 나를 위험한 곳에 가면 어머니, 아버지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것은 자식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정작 어머니, 아버지의 병 때문에 나를 그렇게 바보로 만든 것이 아닙니까? (어머니는 심한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는 결백증을 가지고 있었다. 결백증은 역시 불안장애에 속한다).

 부모님은 여동생들 한데서 Z에게 하는 것 처럼 하지 않았다. 여동생들은 부모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반항과 항의를 해서 부모님에게 부응하지 않았고 자신들을 주장대로 했다. 그러나 Z 군은 부모님의 말에 복종을 했다. 한번도 그가 부모님의 지시에 반항을 하거나 거부를 한 적이 없었다. 그 결과는 여동생들은 그런대로 자기 주장을 하고 자아가 강하게 자라났으나 Z 군은 부모님에게 의존적이고 복종적인 자아가 없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고통 속에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게 된 것임을 이제 그는 깨닫고 있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불안함의 스트레스를 전부 Z 군에게 풀어서 Z 군이 부모님의 스트레스를 흡수하는 피뢰침같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고 부모님에게 살해적인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그가 고 3학년 때 실제로 저녁에 야간 공부를 하고 저녁 10시 경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어머니를 어떻게 살해할까? 망설이면서 목을 눌러 질식을 시켜죽일까? 혹은 망치로 머리를 때려서 죽일까? 하고 노려보면서 30분씩 6개월간 옆에서 지켜 보았던 때를 회상을 했다. 물론 직접 살인을 하겠다는 것 보다 그 만큼 엄마에게 분노하고 죽이고 싶도록 증오했던 그의 내면 속에 묻힌 감정을 인식을 하고 그것을 직접 표현을 하면 할수록 부모님에 대한 분노가 감소하고 부모님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5월 8일 어버이 날을 맞아서 부모님에게 인사차 방문을 해야 하는가? 혹은 문자 메시지로 인사를 해야 하느냐?를 생각하면서 혼자서 고민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결혼을 해서 직장 생활을 하는 여동생들이 주 중이어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는 그냥 모르는체 하고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그날 저녁에 전화를 했다. "너는 어버이 날인데도 왜 부모님에게 전화 한통도 없느냐?"라고 문책성 전화였다. 그는 여동생들이 직장 일로 바쁜 것 같아서 따로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서 전화를 하지 않았는데 이 다음에 여동생들과 같이 의논해서 식사를 같이 하는지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대뜸 이번 토요일 오후에 집에 와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했다. 거절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을 했다. 그러나 여동생들에게 물어 보니 그들에게는 토요일 날 저녁 식사를 부모님과 함께 하자는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문제 메시지로 토요일 날 바쁜 일 때문에 집에 갈 수 없으니 용서를 해 달라고 했다. 저녁 때 어머니는 다시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캐토릭 대학에서 성경 공부 코스를 4년 코스를 시작했는데 토요일에 공부를 끝내고 집에 오면서 너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서 음식을 몇가지 사 왔는데 네가 오지 않아서 내가 슬펐다" 라는 말을 듣고 그는 슬펐다는 말을 쓴 적이 없는 어머니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한편은 그는 어머니가 이제 나이 많아지면서 외로워지자 외 아들인 그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한 어머니의 일들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마치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처럼 한다고 분기탱천했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는 나를 놓아 주세요. 나를 해방시켜 주세요.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 혼자서 책임을 지세요. 나에게 의존하거나 나를 통해서 어머니의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내 삶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외로우시면 동료들과 여행을 가든지 취미 생활을 가지든지 하세요. 내가 어머니의 외로움을 풀어들일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너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라고 질책을 한 것에 항의를 해서 내가 물었지요? 왜 어머니는 여동생들 한데는 그러한 말을 하지 않으면서 나에게만 그런말을 하셨나요? 그에대한 대답으로 어머니는 네가 허약해서 강하게 키울려고 했다고 대답을 했다고 기억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머니의 시도는 그것이 오히려 자녀들에게 불안을 심어주어서 불안장애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 격려와 용기는 자신감을 일으켜 세우고 두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대신에 부모님이 한 행동은 자녀를 강하게 한 것이 아니고 반대로 오히려 자녀들에게 겁을 심어주어서 두려움, 불안 속에 몰아 넣어서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공포 속에 살 게 한다는 것을 부모님은 모르고 있었다. Z은 이것을 알고 이러한 자아-표현과 자아-활동을 성숙하고 성장을 시키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표현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의 자아가 나이에 걸맞게 성숙을 해서 이러한 말들을 어머니,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때 그의 자아는 그의 나이에 맞게 충분히 성숙하게 될 것이다.

 Z씨가 대인관계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의 꿈이 반사시켜 그에게 말을 해 주고 있었다. 다음의 치료 회기는 치료 6년을 마무리 하면서 그가 꾼 꿈을 소개하고 그것을 분석한 것이 소개되고 있다.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