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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40대 초반의 남자 W씨

증세: 밤에 누가 침입을 할까 두려워서 혼자서는 잠을 잘 수 없고 비행기를 탔을 때 비행기가 흔들리면 죽을까봐 두려워서 사색이 되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음

접촉: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받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 왔고 전화로 치료 약속을 하게 되었음

진단: 일반화된 불안 장애, 공포증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으로 6개월간의 치료 계약을 맺고 지금 치료 5회기 10시간 째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치료 10시간 째 아래와 같은 내용의 문제의 핵심이 죽음 공포증의 핵심으로 분석되어졌다. 그는 주 중 내내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고 1주일 동안 마음이 가벼웠다고 말을 하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치료의 과정

 W씨는 다음 치료 회기에서 그가 생각이 나는 것을 몇가지 요약해서 A4 용지로 4장분량의 자료들을 프린트를 해 가지고 가지고 왔다. 그 속에는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이 외할머니의 임종과 어린 시절의 외할머니와 관계된 자료들이었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의 죽음을 임종을 한 사건이었다. 외할머니는 건강하게 잘 지내시다가 어느 날 머리가 아프다면서 몸져 누우셨고 몇 일 후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 가실 때 외할머니 옆에서 외할머니의 임종을 지켜 본 이야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다고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외할머니는 죽음의 직전에 오줌을 싸셨고 오줌을 싼 후에 자신이 오줌을 쌌다는 것을 인식하고 "오줌도 못가리는 년을 왜 낳으셨나요?"라고 원망을 하면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에 어머니는 그녀의 엄마(외할머니)의 죽음에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는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는 이웃 사람이 문상을 와서 화장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에 맞장구를 치면서 그 말이 맞다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선 하다고 했다. 화장을 하는 이유는 어린 소년의 마음에 아버지가 돈이 없어서 화장을 하면 편리하다는 것 때문이었다고 판단을 했다. 아버지는 죽은 외할머니를 10녀년 전에 먼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무덤 옆에 매장을 하지 않고 돈이 부족해서 편리하게 화장을 해서 재를 뿌렷 버렸다고 판단을 하고 있었다. 화장 후에 외할머니의 영정 사진과 화장한 재를 항아리 속에 넣어서 건너 방의 벽장 속에 보관을 하는 것을 보고 나서 그 건너 방에 들어가면 귀신이 나올 것 같아서 두려워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외할머니와 관계했던 기억이 떠 오르면서 W씨는 그의 어린시절 외할머니와 관계된 이야기들을 회상해서 털어 놓기 시작을 했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결혼을 해서 어머니를 낳으셨고 어머니가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되자 어린 시절부터 살림이나 부모님을 모시는 것에 미흡해서 시 부모님이 없는 혈혈 단신으로 월남을 한 아버지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했다. 시부모님이 없이 홀로 성장한 아버지에게 시집을 보내면 시집 살이를 할 필요가 없고 부모님을 모시지 않아도 된다는 외 조부님의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늘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쌀 장사를 해서 상당히 잘 살았다고 했다. 이후에 외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서 몸져 누우시자 어머니가 자신의 부모님과 합가를 해서 외 조부님들과 부모님이 같은 집에 살 게 되었고 이후에 W씨가 4살-5살 쯤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후에 외할머니가 W씨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시기 전에 W씨는 외할머니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함께 했던 기억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위로 세 명의 누나들이 있었고 W씨가 막내였다. 그러나 누나들이나 어머니와 같이 놀거나 함께 했던 기억은 별로 없고 외할머니가 W씨를 보살펴주고 외할머니가 어머니로부터 학대, 무시, 천대를 받았던 이벤트들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외할머니와 함께 했던 W씨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 어느날 W씨가 벽장 속에 숨겨진 땅콩을 꺼내서 먹는 것을 외할머니가 발견을 하고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숨겨 놓고 외할머니에게는 주지 않고 비밀로 한 어머니를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그 때 5살-6살이던 W씨가 "외할머니도 땅콩을 먹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느끼고 외할머니에게 땅콩을 나누어주고 그 다음부터는 맛있던 것들이 있으면 외할머니를 챙겨주셨던 기억들을 회상을 했다. 어느 날 외할머니는 손자인 W씨를 데리고 외할아버지의 산소에 가서 슬피 울던 이벤트를 기억을 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와 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던 것으로 W씨는 회상을 했다. 외할아버지 산소에서 통곡을 하고 우는 외할머니를 옆에서 보면서 외할머니를 달래고 따뜻하게 생겨주려고 했던 회상들을 기억을 했다. W씨가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사업의 실패로 경제가 어려워지가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이웃 동네에 식모로 보내셨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그 때 60세 쯤이 되셨을 것이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이웃 동네에 식모로 갔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오자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되돌아왔느냐?"는 엄마의 비난 소리를 W씨는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박대하고 학대하고 제대로 모시지 않았던 것들을 섭섭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W씨가 유치원 시절에 집에 식모 누나를 한명 두고 있었는데 그 식모 누나는 먼 친척으로 엄마가 가족들의 뒤바라지 때문에 집에서 데리고 와서 자녀들과 식사, 집안 일들을 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회상을 했다. 엄마는 이 식모 누나를 "공순이"라고 비하해서 말을 했고 그 누나는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것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W씨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좋지 않았다. 큰 누나와 엄마는 큰 누나가 미국에 이민을 떠나기 전에 부모님(엄마, 아빠)을 모시고 큰 누나의 자녀들을 돌보아 달라고 모시고 있으면서 엄마와 큰 누나는 자주 갈등을 일으켰고 고등학교 교사였던 맞벌이 부부였던 누나와 자형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면서 "앞으로 절대로 엄마를 모시고 같이 살지 말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이면을 떠났다고 회상을 했다. 엄마가 누나들과 갈등을 일으킨 것들을 회상을 하면서 엄마는 지금도 W씨가 부인의 권유로 함께 모시고 있지만 엄마에 대한 분노, 원망, 섭섭함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서운해 하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있었다. 최근에 10년 만에 캐나다에서 가족을 방문한 누나와 W씨의 형제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엄마가 혼자서 외톨이로 대화에 참가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화가 났든지 "왜 수다를 떨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느냐?"면서 누나와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는 W씨의 가족을 나무랐다고 어이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W씨가 불평을 했다.

 외할머니는 어린 시절에 W씨에게는 엄마를 대신한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에 기억은 별로 없었다. 외할머니는 W씨에게 바로 엄마였다. 늘 W씨의 곁에 있어주고, 같이 놀아주고, 돌보아주었던 바로 엄마였다. 엄마였던 외할머니는 W씨가 초등학교 4학년 떼 세상을 떠났다. 엄마를 잃어 버린 상실이 W씨의 기억 속에서 아직도 외할머니를 떠나 보내지 못하고 40대가 되어가는 W씨의 마음 속에 애통의 그림자로 남아있었다는 것이 분석되어졌다. 외할머니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고 외할머니가 마지막에 한 임종의 말을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고 외할머니를 상상 속에서 떠나 보내지 않고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는 W씨의 어린 시절이 심층에서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울고 있다는 것이 분석되었다.

 W씨는 몇 일 전에 꿈을 꾸었다고 꿈을 가지고 왔다. 그 꿈 속에서 "대학 시절에 연모했던 여자 친구가 하염없이 슬프게 울고 있고 W씨는 달래다가 집으로 간다면서 집 밖으로 나오는데 여기에서 W씨의 집이 있는 의정부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웃 집에 살던 꼬마 여자 아이가 혼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여기에 가만히 있어! 내가 집에 연락을 해 줄께 라고 하면서" 꿈을 깼던 것을 이야기를 했다. 그 꿈 속에서 그 여자 친구는 외할머니가 아닌가!하고 생각이 났다면서 W씨가 말을 했다. 치료자가 외할머니와 대학 시절의 연인과 사이에 어떤 유사점이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W씨는 망설이지 않고 그가 재수를 한 후에 대학에 입학을 했을 때 같은 나이지만 한 학년 위였던 그 연인이 그에게 운동권 써클에 가입을 하라고 권유를 하면서 함께 운동권 서적들을 읽으면서 W씨에게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그 여성을 좋아하고 연모하게 되었으나 그 여성은 남자 친구가 있어서 W씨가 2학년으로 올라간 다음에 운동권 써클을 말없이 떠나 버렸고 이후에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했다. 그가 마음 속에서 그리워하던 첫 사랑의 여인으로 그 이후에 W씨는 약 10년 동안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혼자서 마음 속을 불태우면서 짝 사랑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는 그 여성이 떠난 후에 방탕으로 충동적으로 세상을 살았다고 회고를 했다. 혼자서 그 여성이 한마디 결별의 인사도 없이 떠나 버린 것을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10년 동안 담아두고 괴롭고 고통스러워했었다고 털어 놓았다.

 W씨는 그가 스스로 자신이 마음 속에 담아 두고 떠나 보내지 못하고 있는 사건들이 3개가 있다고 회고를 했다. 첫 번째는 치료자가 그의 공포증의 핵심으로 지목을 한 한쪽 발을 잃어 버린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애통이고 두 번째가 외할머니를 떠나 보내지 못하고 마음 속에 그리워하면서 애통해 하고 있는 것이고 세 번째가 W씨의 마음 속에 떠나 보내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 애통해 하고 있는 첫 사랑의 여인에 대한 애통이 그것이었다. 이 세 개의 결별을 그는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지 못하고 담아두고 아직도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먼저 외할머니에 대한 애통의 과정이 치료에서 다루어 지기 시작했다. 치료자는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을 직접 끄집어내어 애도의 과정을 거치게 했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박대, 천대, 멸시를 받았던 기억들을 회상을 하고 소상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W씨는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통곡을 했다.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가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들을 하게 했다. W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할머니 저를 용서해주세요. 나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천대, 멸시, 박대를 당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내가 할머니를 보살펴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속죄의 눈물을 흘렸다. 외할머니의 임종을 지켜 본 것을 직면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외할머니가 죽음의 직전에 한 마지막 말 "오줌도 못가리는 년을 왜 낳으셨나요?"라고 원망하면서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의 말뜻이 무엇인지가?를 회상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 말은 두 살 때 엄마를 잃어 버리고 고아처럼 아버지의 손에서 자란 외할머니가 평소에 늘 그리워하면 엄마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회상하면서 "엄마, 보고 싶어요, 평생 동안 엄마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엄마! 엄마는 왜 나를 낳으셨나요. 왜 내 곁은 떠나셨나요!"라고 평생동안 엄마를 찾으면서 절규했떤 그 마지막 통곡이 "왜 나를 낳아서 평생동안 그렇게 엄마를 찾게 만드셨나요!"라는 한 맺힌 절규가 아니었겠느냐?"라는 치료자의 지적에 그는 대성 통곡을 하면서 울었다.

 앞으로 치료 회기 내내 위의 상실을 떠나 보내지 못한 W씨의 내면 속의 그리움, 애통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분노, 미움, 적대 감정 들이 초점이 맞추어지고 다루어져서 W씨의 내면 속에 갇혀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쌓여있는 부정적 감정들이 밖으로 방출되어지고 W씨가 표현을 하지 못하고 정화시키지 못하고 마음 속에 찌꺼기로 남아있는 목졸린 감정들이 수리가 되어지고 정화되어져 마음 속에서 씻어내는 치료의 작업이 W씨의 치료가 될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었다.

 그는 지난 몇 주일 동안 치료를 받고 집에 가면 마음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콧 노래가 나온다고 즐거워하면서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 떠나 보내지 못하고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슬픔, 분노, 애통, 그리움, 그리고 분노, 미움, 적대 감정들을 다루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W씨가 치료에 가지고 온 두 개의 꿈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내면 심층의 핵심 문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치료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