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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7세의 직장인 D씨

증세: 숨이 막혀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아서 심리치료 직전에 1달에 8회 병원을 들락거림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바로 이 선생님이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직감을 느끼고 즉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휴대폰으로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불안 장애, 공황 장애, 자아 장애

치료 기간: 첫 달에는 1주일에 3회씩 1회 당 2시간씩 분석치료를 받다가 3개월 이후부터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치료 전에 복용하던 약물은 치료가 시작되면서 중지되었고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서도 이후에 공황장애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고 치료 6개월 째 공황장애는 사라졌다. 지금은 연약한 자아 개발에 치료의 초점을 맞추고 6개월의 치료 종결을 바라보고 있음

 

치료의 과정 

 D씨는 치료자를 찾아오기 직전에 숨이 막혀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1달에 8회나 병원의 입원과 출입을 반복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인터넷의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접하고 나서 "이 선생님이야 말로 바로 나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다, 바로 이 선생님이다!" 라는 머리 속을 스쳐가는 직감을 느끼고 나서 즉시 치료자에게 전화로 치료를 받겠다고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치료 회기 첫 시간에 그 자신의 증세와 고통스러움을 간단하게 요약을 해서 A4 용지로 4 장 정도를 적어서 치료자에게 가지고 왔다.

 

 현재의 문제점

 치료자가 그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현재의 공황 장애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서슴치 않고 그가 생각하고 있는 현재 문제의 원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미 이 이야기를 하기로 작정을 한 것처럼 그는 치료자에게 일사천리로 그의 고충담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한 토목 회사 사장의 전용 운전사로 10년째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장에게 노예처럼 끌려 다니면서도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10년동안 일을 해 온 것을 한이 맺힌다는 듯이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그의 사장은 50대 초반으로 다혈질의 성격으로 D씨에게 심리적인 상처를 많이 주었다고 했다. 사장의 전용 운전수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비상 대기로 있어야 했다. 사장이 저녁 늦게 술집에 들어가서 일을 보고 나올 때까지 그는 차 안에서 혹은 술집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를 몰고 갔다가 업무를 맞치고 나서 바로 서울로 다시 직행을 하는 것은 예사였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식 자동차를 운전을 해서 몸이 피곤해서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었지만 D씨는 절대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시키는 일을 묵묵히 말없이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해서 열심히 해 왔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사장으로부터 언어 폭력을 많이 당했다. 그러나 한마디도 불평이나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해서 일을 해 왔다고 울먹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실토록 하라는 치료자의 요구에 부응해서 있는대로 토해 냈다. 사장들의 모임에서 다른 사장들이 D씨에게 가엽다면서 용돈을 줄 때 사장은 이것을 가로 막으면서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운전도 제대로 못하고 지역이나 지리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우왕좌왕하는 놈에 무슨 용돈이냐!" 등은 예사였다. 피곤해서 좀 쉬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면 "네 놈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 운전 아니냐? 운전도 못한다면 네 놈에 제대로 하는 일이 한 개라도 있느냐?"면서 퇴박을 주기가 일수였다. 첫 입사 후에 약 10개월을 운전을 하다가 이렇게 하다가는 제명에 못살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기로 회사에 퇴직 의사를 전달하고 회사를 나가지 않았다. 취업해서 들어온 다른 전용 운전사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다시 한 달 후에 사장이 불러서 강제로 사장 전용 운전사를 계속해서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10년간을 해 오고 있다고 했다. 전임 운전사가 한달도 배겨내지 못하고 떠나면서 그에게 "사장님은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로 외계인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작년 6개월 경에 그 사장님은 식도 암으로 수술을 받고 나서 이제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지 않게 되고 몸에 신경을 쓰면서 D씨의 일과도 많이 감소되어 지금은 편안하게 별 무리가 없이 운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장님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관공서에 토지 측량을 해서 지도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고로 전국 각 지역이 그의 업무 영역이었고 언제 그 쪽으로 직행을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관계를 하고 있는 지역은 우리나라 전역이 그의 활동 무대였다. 자연히 D씨는 사장이 가자는 곳에는 가타부타가 없이 즉각 그곳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다른 사장 운전수들은 미리 계획이 잡혀 있고 예고가 되어있어서 시간적으로 준비를 하거나 자동차를 정비를 하는 것 등을 돌볼 수가 있는데 D 씨의 사장은 미리 예견된 시간표가 없었다고 D씨가 불평을 했다. 퇴근을 해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도 D씨는 한번도 제대로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언제 호출이 떨어질 수 몰라서 안절부절 못하고 언제나 초조했다고 털어 놓았다. 언제라도 예를 들어서 저녁 늦게 호출을 하거나 새벽 녘에 호출을 하면 즉각 차를 가지고 대령을 해야 했다.

 사장과의 대인관계에서 D씨가 복종적으로 Yes 맨이 된 것은 D씨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직업 군인으로 가족들에게 늘 "--해라" "--해서는 안 된다"라는 명령어로 교육을 받아온 것이 밝혀졌다. 부모님 한데서 늘 명령어로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의 부모님과의 관계 패턴이 어른이 된 지금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음이 분석 결과 밝혀졌다.

 

 D씨의 어린 시절

 그는 어린 시절에 고통스럽게 성장을 한 사람이었음이 밝혀졌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2살이나 아래로 결혼 후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술을 마시면 어머니와 싸웠다. 아버지의 봉급은 거의 술로 탕진을 한 것 같았다고 회고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온다고 예견이 되면 아예 모습을 감추고 숨어 버렸다. 아버지는 늘 어머니를 데리고 오라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자녀들을 모두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숨어서 지냈다고 했다. 그는 위로 누님, 형님, 그리고 D씨와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다. 결혼 후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봉급을 술로 탕진해 버리자 집 안에서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고 한 때는 돼지를 적게는 약 50마리에서 많게는 약 100여마리를 사육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돼지와 가축을 기르는 일 때문에 D의 형제들을 제대로 어린 시절에 돌보아주지 못한 것 같았다. D씨는 어머니로부터 따뜻하게 품에 안기어서 어머니의 정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어린 시절에는 늘 밖에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기억밖에 없다고 회고를 했다.

 아버지가 전역을 하게 되면서 가족들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서울에는 외갓집의 가족들이 살고 있고 D씨는 외삼촌의 지하방에 살 게 되었다. 그는 서울에 와서 첫 한달 동안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숨어서 지냈다고 했다. 부모님이 학교에 전학을 시켜면서 담임 선생님에게 인사를 시키고 그를 담임 선생님에게 인계를 해주지 않았고 D씨에게 그냥 그 학교에 등교를 하라는 말한 했기 때문에 그는 새 학교가 두렵고 불안해서 학교에 간다는 말만 하고 학교를 가지 않고 한 달 가량 숨어서 지내다가 나중에 엄마에게 발각되어 심하게 처벌을 받은 기억을 회상을 했다. 외가집의 외사촌들 이외에는 친구가 없었다. 외톨이로 초등학교를 보냈다고 기억을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 사귄 한 친구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으나 그 친구가 도벽이 있어서 남의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는 나쁜 행동에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그는 그 친구의 바람잡이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같이 다니면서 훔친 과자나 물건들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그 친구가 어떤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발각되어 파출소로 끌려 가게 되었고 상점 뒤에서 숨어 망을 보던 D씨도 공범으로 같이 파출소가 끌려갔다가 부모님이 연락을 받고 D씨를 데리고 집에 왔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그 친구와는 결별을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6학년이 되어 사춘기가 되면서 형님과 갈등이 많았다고 했다. 형님은 늘 D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명령 쪼로 이야기를 했고 D씨는 형님에게 대들고 반항적이 되어 서로 다툼이 많았다고 했다. 형님은 화가나면 D씨의 머리를 자주 때리면서 "네가 뭐냐! 왜 그래?" 등으로 D씨를 괴롭혔다고 했다. D씨는 지금도 왜 형님이 D씨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서울로 이사를 온 직후에 이모와 함께 분석점을 내서 음식점을 하다가 강도를 당한 이후에 놀래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고 쉬다가 기도원으로 들어가고 말았고 D씨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보살핌과 돌봄을 그 이후부터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을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D씨는 집으로부터 일찍 독립을 했다. 야간 공업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낮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그 때부터 D씨의 우울한 성격은 밝은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뀌고 대인관계도 좋아졌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D씨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이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직업을 진전하다가 이후에 결혼을 해서 D씨는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큰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고 작은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으로 자녀들에게 늘 잘 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죄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마침내 한 토목 회사에 사장 전용 운전수로 직장을 얻어서 지금까지 10년 동안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론적 근거

 D씨는 자아가 두 개로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 분석의 과정에서 밝혀졌다. 초등학교 시절에 자아는 우울하고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잘 표현을 하지 못하는 연약한 자아로 형성되어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많이 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잦은 다툼으로 집안에서는 늘 고통스러웠고 불안했다.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형님으로부터 잦은 처벌과 갈등 그리고 친구들이 없어서 외롭고 두렵고 불안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이후부터는 긍정적이고 밝은 자아로 바뀌었고 이 자아가 이후에 직장 생활과 사회 생활에 잘 적응이 되어왔으나 토목 회사에서 권위적이고 명령적인 사장 밑에서 10년 동안 고통스럽게 지내오면서 분노, 노여움, 적대 감정이 누적되어 신체적 불안과 긴장과 두려움을 자극해서 어린 시절의 불안한 두려움의 자아, 공포의 자아 그리고 죽음의 자아가 공포를 몰고 와서 그의 현재의 자아가 벼랑 끝에서게 되어 공황 장애로 나타나게 된 것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그는 늘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고 가슴이 쿵꽝거리고 숨이 가파지고 호흡이 짧아지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한 곳에 정신이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호소를 했다. 신문니나 잡지 혹은 뉴스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생각으로 집착이 되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고 했다.

  분석에서 D씨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 형님 그리고 현재의 그 회사의 사장이 동일시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게 되면서 불안이 감소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사용하는 말투가 유사하는 것을 치료자가 지적을 하면서 D씨가 깨닫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군인으로 늘 명령어를 사용해서 자녀들과 의사 소통을 했다. D씨는 한번도 아버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해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언제나 아버지는 "--해서는 안된다. --해야 한다" 등으로 제대로 D씨의 생각과 느낌과 상상들을 표현하도록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다. 형님 역시 아버지를 닮아서 D씨에게 "왜 그래?" "네가 뭐냐!" "무슨 이유 때문이냐?" 등등으로 명령식이었다. 현재의 사장님도 역시 "네가 뭐냐?" "왜 그래?" "그것도 제대로 못하냐?" 등등으로 명령식이고 세 사람의 공통점이 권위적이고 명령적이고 D씨는 복종적이었다는 점이었다. D씨가 자신도 모르게 이러한 명령식의 대화를 싫어하고 이런 대화 때문에 형님과 많이 다투었다는 것이 분석되어지면서 D씨가 깨닫게 된 것이 D씨 자신도 자녀에게 그러한 대화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특히 둘 째 아들은 사춘기에 들어가면서 아버지인 D씨와 관계가 갈등적이어서 D씨가 과거에 사춘기에 들어갈 때 그의 형님과 갈등 관계와 지금의 아들과 D씨의 갈등 관계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치료의 과정에서 D씨는 일차적으로 지금까지 누적되어온 마음 속에 쌓인 분노, 적대감정, 그리고 노여움, 불평 불만들을 쏟아 내도록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써 D씨는 마음 속에 누적된 울분을 마음대로 표현을 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특히 어머니에 대한 미움, 분노, 그리고 형님에 대해서 왜 D씨를 그렇게 미워하고 처벌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의 사장에 대한 울분을 토해내도록 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와 형님 그리고 그 사장에 대한 분노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치료가 5개월 정도 지나가면서 어린 시절로 다시 되돌아가서 내면 속에 깊이 묻혀 있는 연약한 자아와 대화를 시작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게 했다. 이러한 노여움과 두려움, 공포스러움 들이 말로써 표현을 하게 되면서 D씨의 두려움, 불안이 점차로 감소되어져 가는 것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치료 5개월의 시쯤으로 들어가면서 그는 이제 더 이상 죽음, 두려움, 불안의 생각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여기에서 벗아나고 있다고 스스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D씨의 대화 스타일도 상세하게 설명을 하는 스타일로 조금씩 바뀌어지고 있음을 자녀들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났다. 둘 째 아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바뀌어서 좋은 관계로 바뀌고 있었다.

 특히 D씨는 부인과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부인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치료가 5개월 정도 진행이 되면서 부인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 주장 훈련과 커뮤니케이션 훈련을 통해서 부인과의 소통이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금전적인 문제를 부인과 솔찍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치료 4개월이 지나가면서 부인에게 자신의 비자금을 넘겨주고 부인과 일상 생활에서 사소한 것들을 소통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늘 집에 가면 더 불안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문제는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장애물의 등장

 치료 5개월 시쯤에서 D씨가 근무하고 있던 토목 회사의 불황으로 D 씨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사장님이 조용하게 D씨를 불러서 회사가 어려우니 정리 해고를 시작하게 되었고 D씨에게 2개월치 봉급과 퇴직 위로금을 지불해줄 터이니 회사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내년 초에는 대규모 정리 해고가 있을 것인데 그 때는 위로금이나 2개월 치 봉급은 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에서도 D씨는 사장의 해고 정리에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억울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점에서 일자리 문제로 다시 불안에 휩쓸리게 되었다. 정리 해고 1순위에 자신이 걸리게 된 것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토해내게 했다. 사장 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사장님 너무 억울합니다. 내가 10년 동안 사장님이 시키는 일에 대해서 일체 불평 불만을 한번도 말로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인간입니다. 기계가 아닙니다. 내가 한번도 내 불평 불만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내 가족들을 위해서 내 직장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는 노예를 부리듯이 마음대로 부려먹고 이제 효용 가치가 떨어지니까 정리 해고 일순위가 된 것이 너무 억울합니다. 내가 필요할 때는 그렇게 가혹하게 부려먹고 이제 내 가치가 떨어지니까 나를 헌신짝 버리듯이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이러한 억울함을 마음 껏 표현하게 했다. 그가 10년 동안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해고 당하지 않기 위해서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솔찍하게 털어 놓았다. 그러나 사람이 말을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생각, 느낌, 상상 등을 솔찍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이 치료 과정을 통해서 D씨가 깨닫게 되었다. D씨는 사장님이 자신의 충성심을 높이사서 끝까지 회사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기대를 했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짐을 느꼈다고 솔찍하게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표현 훈련이 약 1달간 지속되면서 D씨의 두려움과 불안의 신체적 표현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치료의 결과

 치료가 진행되어가면서 D씨에게 공황 장애는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약물은 치료 시작 후에 한번도 복용을 하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는 사라졌다.

 일자리를 잃고 나서 D씨는 한 때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불안에 휩쓸리게 되었다. 치료자는 이러한 불안의 재 등장은 직장을 잃은 것과 관계가 있다고 해석에 주었다. 직장을 잃은 슬픔, 두려움, 불안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마음 속에 담아 두지 말고 표현을 하도록 했다. 다행히도 그는 정리 해고로 그 직장을 떠난 지 2주일 만에 새로운 적당한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 보수나 하는 일도 D씨에게 만족스러운 일자리였다고 그가 좋아했다. 그는 사장의 전속 운전사로 근무하면서도 작년 6월 달에 사장의 식도 암 수술로 사장의 건강 때문에 D씨의 일이 줄어들면서 자신이 일자리를 혹시 잃지 않을까? 사장님이 무리하게 일을 벌리지 않게 되면서 자신의 일이 감소되는 불안 속에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털어 놓았다. 이제 그러한 불안이 현실로 바뀌었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새로운 직장에서 하는 일과 직장 동료들과 관계에 익숙해져 적응을 해가면서 두 번째로 등장한 그의 불안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이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연약한 자아와 현재의 자아를 통합하는데 치료의 초점을 맞추고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 치료 종결의 6개월의 끝지점을 바라 보면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그 동안에 불안에 휩쓸러 죽음의 공포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치료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6개월 치료의 종결을 예고했다.

 D씨는 치료 종결 1년 후에 다시 치료자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공포감 때문에 치료를 재개를 하게 되었다. 그는 다시 6개월간의 치료 재 계약을 하고 치료를 하면서 그의 문제점들이 분석되어졌다. D씨의 첫 번째 증세는 공황 장애였고 두 번째 증세는 공황장애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증이 핵심 문제가 되었다. D씨의 치료를 상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