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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40대 후반의 남자 C씨

증세: 왼쪽 모서리 쪽으로 신경이 쓰여서  주의 집중이 잘 안되어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없었음

접촉: 부인의 소개로 남편 C씨가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음

진단: 모서리 강박증, 불안 장애, 회피적 성격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6개월 치료를 받음

치료 결과: 모서리 강박증은 거의 사라졌으나 계속해서 불안 장애 치료를 받으라는 권유에 치료 비용 문제로 불안 장애는 이 다음에 받기로 하고 치료를 종결함

 

치료의 과정

 C씨는 부인의 권유로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C씨는 40대 후반으로 대 기업의 컴퓨터 담당 일을 약 20년간 해 오다가 7년 전에 왼쪽 모서리에 신경이 너무 쓰이는 바람에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스스로 사퇴를 하고 5년간 집에서 쉬고 있다고 최근에는 야간 업소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었다. 왼쪽 모서리에 신경이 쓰이는 모서리 공포증 때문에 직장에서 하는 자신의 업무에 주의 집중이 안 되는 바람에 신경 정신과에서 약물을 복용해 왔으나 C씨의 직장에서 하는 일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는 결국 주변에서 일하는 부하직원들의 눈초리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사표를 내고 말았다. 신경 정신과 약물이 긴장을 이완 시키고 잠이 오게 하는 수면제의 과다 때문에 직장에서 근무 중에 졸면서 그것도 코를 골면서 자는 모습이 직장 동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고 모서리 공포증에 대한 스스로의 자아 의식 때문에 결국은 직장에서 물러 나게 되었다.

 C씨의 모서리 공포증은 C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었다. C씨는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C씨는 자신의 모서리 공포증 때문에 중년 후반기에 결국 직장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인정했다. 모서리 공포증이 자신을 스스로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오게 만든 장본인 임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 때 신경 정신과 의사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왜 모서리 공포증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고 지금까지 7년 동안 정기적으로 바로 그 신경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물을 지금도 복용을 하고 있었다. 그 약물이 자신의 모서리 공포증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대도 불구하고 규칙적으로 신경 정신과에 드러들면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

 C씨의 모서리 공포증은 어린 시절의 C씨가 심리적 상처를 받은 것과 관계되어있었다. C씨는 3살 때 아버지의 외도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하는 바람에 2살 어린 여동생과 함께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이 밝혀졌다. 엄마가 일을 하게 되었고 그 때 C씨가 3살이었고 여동생이 1살이었을 때 사촌 누나가 C씨의 집에 와서 C씨와 여동생을 돌보아 주었다. 누나가 엄마의 대역을 해주어서 그런대로 잘 지냈다. C씨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남겨준 집을 처분하고 월세방으로 전전했다. C씨는 지금도 어머니가 어떻게 양옥집을 팔아서 어디에 썼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4살 때부터는 작은 집으로 전전하게 되었고 엄마는 언제나 저녁 늦게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C씨는 엄마가 한번씩 외간 남자를 데리고 와서 집에 같이 몇 개월간 지내기도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남자가 몇 번씩 밤 중에 일어나서 뒷간(변소의 사투리)의 열린 문 쪽으로 멍하니 쳐다 보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정신 이상의 장면이 지금도 기억난다고 했다. 이유는 물어보지도 않았고 물론 엄마에게 그 이야기는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렇게 해서 지나갔고 그 때 어머니가 정식으로 재혼을 하는 바람에 C씨와 여동생은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C씨가 그 때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여동생이 1학년이었다고 기억을 하고 있었다. C씨와 여동생 그리고 누나 세 사람은 양모와 살고 있는 아버지 집에 맡겨졌다. 그러나 몇 개월 후에 누나는 집을 떠나갔다. 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잘 살아라고 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아버지는 야간 유흥업소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새벽 3시-4시 경에 집에 들어왔고 자녀들과는 대화할 시간도 없었고 또 지금까지도 C씨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양모는 자녀가 그 때는 없었다. C씨와 여동생은 언제나 양모의 처벌이 두려워서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다. 두 사람은 언제나 학교에 갔다오면 집에 오자마자 걸레를 빨아서 마루와 방안 그리고 거실들을 청소를 해야 했다. 추운 겨울에 손이 터져서 피가 나와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똑 같이 집안 청소를 하고 식사는 가족과 같이 하지 못하고 김치 몇 조각과 밥을 부엌에서 먹어야 했다.

 추운 겨울이어서 그는 여동생과 함께 걸레를 빨아서 마루를 닦으면서 손 등이 갈라지고 손에 동상이 걸렸다. 하루는 학교 동급생들이 이것을 알고 돈을 모아서 C군의 약을 사서 집에 같이와서 양모에서 C군을 혹사하지 말라고 항의를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된 집안 청소를 하는 것은 C씨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더욱 힘든 것은 양모가 C씨에게 어머니가 한 달에 한번씩 찾아와서 자신과 여동생을 만나고 간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양모가 그 날은 어머니가 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왔다 갔느냐고 물었고 C씨는 어머니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양모는 다 알고 말하는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C씨를 엎어 놓고 대나무 빗자루로 두들겨팼다. 빗자루가 부르지고 허벅지와 엉덩이에 멍이 들었지만 C씨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못했다. 양모에게 매맞는 학대는 계속되었다. 그는 이후에 걸핏하면 어머니가 왔다 가지도 않았는데 거짓말을 한다면서 C씨를 다듬이 방망이로 머리를 때려서 머리가 터져서 손으로 만지니 피가 쏱아져 나왔다. 그래도 그는 아무 소리도 항의도 못했고 때리는 대로 맞았다고 했다. 자신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번은 C씨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서 부엌 마루에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머리에 천둥이 치듯이 번쩍해서 일어나 보니 양모가 매로 자신을 때려서 마루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고 했다. C의 학대받은 일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에 양모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C씨 앞에서 발까벗고 목욕을 하면서 몸에 때를 밀어달라고 했다, C씨는 그 때 양모의 음부와 음모를 처음으로 보았다고 했다. 그는 양모의 몸에 때를 밀어주었다. 또 이후에 양모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놀면서 방에 드러누워서 자신에게 발과 다리를 주물러주게 했다. 양모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양모의 몸을 마사지해주고 몸을 주물러주는 하인 역할을 한 것이 지금도 모욕감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C씨와 여동생은 더 이상 양모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서 가출을 하기로 했다. 그와 여동생이 그 때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고 했다. 무작정 집을 나서서 어머니의 고향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딘지 모르게 고향 이름만 듣고 그 쪽으로 걸어갔다.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어느 동네 앞을 지나가다가 어른들이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을 때 엄마의 고향 이름을 대면서 그곳으로 간다고 했드니 그 곳은 지금 너무 멀어서 밤인데 갈 수 없으니 여기에 자고 내일 아침에 가라고 해서 그곳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얻어먹고 나서 차비까지 얻어서 차를 태워주어서 외할머니 집에 도착했고 외할머니가 재혼한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한 달 후에 엄마가 찾아오게 되었고 다시 엄마가 재혼한 양부와 이복 형제 2명과 같이 살 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양부가 일을 하지 않고 매일 같이 술과 소일을 하면서 엄마와 싸우는 바람에 그곳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다. 한번은 엄마가 C군과 여동생에게 영화를 관람하라고 돈을 주었는데 양부가 자신의 2명의 자식에게는 돈을 주지 않으냐면서 칼을 들고 싸우는 바람에 기절초풍했다고 기억을 이야기했다. 할 수 없이 C씨는 다시 어머니 가족과 해어져서 다시 양모가 있는 아버지의 집으로 갔다. 중학생이 된 C씨를 양모는 더 이상 때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곳에서 2년동안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3학년 때 한 반에서 3명만 주는 우등상을 탔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학생이 되면서 C씨는 다시 여동생과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서 합류를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혼을 하고 양부와 자식들은 떠났고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C씨와 여동생이 가출해서 아버지 집을 나와서 외갓집으로 도망을 왔을 때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서 전세 방을 얻을 돈을 타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준 그 돈으로 양부와 자녀들과 함께 6명이 이곳저곳으로 전전하며 살다가 돈을 생활비로 다 날려 버렸다고 C씨는 분개했다. 어머니와 여동생과 C씨만 같이 살았다면 어느 정도 괜찮았을 터인데 어머니는 그 돈으로 양부와 자식들을 먹여살리느라고 돈을 낭비했다고 분개했다.

 어머니와 여동생과 C씨는 셋방을 전전하면서 허름한 달동네에서 판자집을 짓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C씨에게는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몇몇 친구들과 사귀게 되었고 함께 어울리면서 우쭐거리면서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고 회고 했다. 그 때 친구들 집에 가서 자고 오기도 하고 자신의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잠을 자고 가지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지나고 고 3이 되면서 진학반에 들어가서 일류대학 반에 들어갔다. 그 때는 일류대학반, 이류대학반으로 나누어저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일류 대학 반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다가 다른 학생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이류대학반으로 밀려내려오게 되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다 싶이했고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2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시작될 무릅인 겨울 방학인 2월 달에 C씨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왼쪽 모서리에 신경이 자꾸 쓰였다. 그 쪽에 신경이 쓰이는 바람에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부터 왼쪽 모서리 강박증이 생기게 되었고 이후부터 평생 동안 모서리 강박증은 C씨를 따라다녔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졸업 후에 C씨는 컴퓨터 학원에서 컴퓨터를 6개월간 배우게 되었고 이어 대 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에 C씨는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 게 되면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전세 집으로 옮기고 같이 살다가 현재의 부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여동생은 이후에 결혼해서 독립해서 나가고 C씨는 2명의 자녀들이 태어났다. 맞벌이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 어머니는  C와 함께 살 게 되었다. 이후에 대 기업에서 약 2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언제나 모서리 강박증은 따라다녔다. 약 7년 전에 사무실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모서리 강박증 때문에 신경이 쓰여져서 주변의 동료들이 자신에게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같아서 그는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는 신경 정신과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엇다. 일을 하다가 잠이 쏱아졌다. 깜빡 잠이들면 코르 골면서 잠을 잔다고 쑤근거리기 시작하자 할 수 없이 직장에 사표를 쓰게 되었다. 그 후 4년 동안은 집에서 그냥 놀면서 지냈다. 한번 상실한 일자리는 다시 찾기 어려웠다. 결국은 일자리 찾기를 포기하고 지내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야간 업소에서 청소업을 하기 시작한지가 6개월 정도 되었다고 했다.

 C씨는 지금까지 자신의 과거 초, 중학때까지의 있었던 일들을 부인이외에느 아무 한데고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의 과거를 비밀로 마음 속에 덮어둔 것이 불안증의 원인이 되었고 이것이 결국은 모서리 강박증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특이하게 C씨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해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아버지와는 어린 시절부터 한번도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해 본적이 없다고 했다. 결혼 후에 C씨는 부인의 요청으로 아버지와 양모를 인사차 방문하게 되었을 때도 그리고 명절 때 아버지의 방문 때에도 아버지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몇 마디 주고 받는 인사가 끝이었다.

 

이론적 근거

 어린 시절부터 대화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 즉 대화를 하는 기술을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자아가 억압당해서 심층에서 울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C씨는 한번도 양모의 학대와 아버지의 방기에 대해서 분노해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감정을 억압해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분노, 미움, 노여움, 슬픔, 외로움을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C씨에게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억압되어 눌러 무의식 속에 묻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C씨는 결혼 후에 부인에게 이러한 이야기는 했지만 여기에 따른 감정을 표현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고로 C씨는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고로 대인관계가 끊어져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어느 정도 어울렸으나 자신의 속의 내면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과거는 덮어 버렸다. 고로 하는 이야기를 피상적인 일상적인 이야기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이었다. 항상 외롭고, 친구가 없고, 부인과도 말이 별로 없고 늘 우울한 표정이었다고 했다.

 C씨에게 분노, 노여움, 적대감정을 금기시 되어왔다는 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아빠가 늘 싸우는 모습을 보아온 C씨는 자신의 감정을 위험한 것으로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묻어놓고 살아온 것이다. 한번도 그 감정을 꺼집어 내 본적이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학대받은 사실 조차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C씨의 어린 시절은 죽어 버린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자아는 죽음 속에 버려진 것을 의미했다. 심층에 분노와 적대 감정을 묻어서 죽여 버린 것이었다. 감정은 에너지 이다. 감정이 위험하다고 억압해서 묻어 버렸으니 감정이 죽어 버려서 감정의 불구자가 된 것이었다. 고로 살아있는 원기가 왕성한 사람이 아니고 살아서 죽은 사람, 감정이 없는 로봇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억압되어있는 감정을 목이 졸려서 갈곳이 없다. 고로 그 감정이 모서리에 쏠리면서 모서리에 공포증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모서리를 보면 다친다는 모서리에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항상 모서리에 다가가는 것을 꺼려왔다고 했다. 모서리는 상처, 즉 어린 시절에 양모에게서 매맞은 상처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무의식 속에서 모서리에 다침으로 연결되어있었다.

 치료에서는 어린 시절에 묻어 버린 어린이 자아를 꺼집어 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상처 이벤트로 되돌아가서 그 이벤트르 재연해서 묻힌 죽은 감정들을 꺼집어내어 그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C씨는 지금도 생생하게 그 장면들을 회상할 수 있었다. 30년이 지나간 그 장면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분노와 적대 감정을 토해냈다. 양모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이고 싶다고 했다.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하도록 했다. 양모에게는 아예 인간이 아닌 짐승같은 사람으로 말을 입에 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말조차 하기 싫다고 했다. 꼴 보기도 싫고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는 자신의 분노, 적대 감정을 조금씩 표현할 수 있게 되어갔다.

 어린 시절에 목졸린 감정이 밖으로 터져 나오면서 조금식 불안이 감소되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모서리 공포증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 게 되었다. 자신의 감정을 방출 시키면서 불안과 분노가 조금씩 줄어들어가면서 가족과 관계에서 웃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인과 20여년간 살아 오면서 늘 C씨는 말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치료 시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부인에게 하도록 했다. 부인과 이야기가 조금씩 많아져 가면서 불안증이 감소하고 이제는 7년 동안 먹어 오던 약물을 먹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고 약물 복용을 하지 않다고 가끔씩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약물을 조금씩 복용을 한다고 했다.

 

치료 결과

 C씨는 야간 청소 작업을 열심히 해 오다가 팔을 다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집에서 쉬면서 다른 직장을 찾고 있다. 치료를 계속해서 불안증에서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에 치료 비용 때문에 치료를 당분간 중지하기로 했다. 얼굴에 웃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고 가족들이 모처럼 화기애애 하게 웃음으로 지내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부인과의 대화가 많아져서 모든 것을 서로 의논하게 되었다. 그는 대화가 이렇게 중요한 것임을 미쳐 몰랐다고 했다. 자신의 속 마음을 밝히는 것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마음 속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오게 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과 유사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과거의 학대받던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자녀들과의 관계도 많이 개선이 되었고 부인과의 관계도 개선이 되었으나 아직도 불안 장애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려고 하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