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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제랄드 에델만(Gerlard Edelman, 2005)이 쓴 하늘보다 더 넓은 의식 세계에서 그리고 일리노이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피터 지오바치니(Peter Giovacchini, 1987)인간의 마음은 우주보다 넓다고 한 것에 더 붙여서 버클리 대학 뇌 과학자인 엘리오트(Elliot, 1999)가 쓴 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서 그리고 같은 대학의 뇌 과학자인 다이아몬드(Diamond, 1999)가 쓴 저서 마음이라는 마술의 나무에서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뇌 세포가 우주의 별 보다 많다라고 강조를 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3파운드(뇌의 무게)밖에 안되지만 여기에 비밀스런 수수께끼가 숨어있다는 것은 옛날부터 알고 있었고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3파운드의 뇌 안에 있는 마음 즉 자아가 지금까지 인간 역사의 위대한 문명과 문화를 만들고 유지해오지 않았는가? 우주 로켓, 비행기, 휴대폰, 컴퓨터 등등 이름을 댈 수 없는 수 많은 발명 품들, 발견들이 바로 인간의 3파운드의 뇌 즉 마음인 자아()에서 나온 것들이 아닌가?

 실제로 뇌를 해부해서 보면 좌뇌, 우뇌의 두 개로 되어있고 이 두 개의 뇌를 연결하는 뇌엽 그리고 대뇌, 소뇌, 아미그달라(감정의 뇌: 편도체), 하이포캠파스(기억의 뇌: 해마이랑), 림빅 조직(욕구의 뇌: 변연계) 등으로 그리고 손, , 다리, 무릎 등이 뇌에서 먼 쪽에서 먼저 시작되어 가까운 쪽이 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좌뇌는 언어 영역, 우뇌는 공간 능력을 담당하고 각 부위의 정보들이 뇌엽을 통해서 서로 교환이 되어서 뇌는 두 개로 보이지 않고 통합되어져 한 개로 되었다고 보인다는 것 그리고 기억들이 뇌 세포에 저장되어져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뇌를 해부해 보아도 마음이라는 것 즉 자아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가 없다. 고로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왔다. 두 개의 뇌를 한 개의 뇌로 통합을 하고 이 정보와 뇌 조직을 컨트롤하고 정보를 모아서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내일의 일과를 계획하고 하루의 일을 수행을 하는 자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것에 대한 물음은 쉽게 풀렸다.

눈에 보이지 않고도 존재한다는 것은 바람을 보라,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바람은 힘과 방향을 가지고 있는 벡타(vector)(물리학적인 용어: 힘과 방향)이다. 태풍, 허리케인, 토르네이도 등은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사용되는 이름이지만 자동차, , 사람 등을 힘으로 날려버리거나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일찍이 영국의 자연주의 시인 워즈워드(Worthword)는 그의 바람에 대한 시에서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바람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네! 바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나무 잎이 살랑거릴 때 바람이 지나감을 안다!”라고 노래를 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고로 우리 인간의 마음 즉 자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를 한다, 마음은 힘과 방향을 가진 벡타이다. 고로 자아의 힘과 방향, 움직임 등을 역동적으로 연구를 하게 된 학문이 등장하게 된다. 물리학에서 사용하던 thermodynamic 이라는 용어는 thermo() + dynamic (움직임, 역동)이라는 말이 통합이 되어서 열 역학이라는 학문으로 기관차, 자동차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thermo – 대신에 psycho라는 말을 대입을 시켜서 psychodynamic 이라는 말로써 심리 역동학으로 마음의 힘과 방향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정신분석학의 한 갈래인 심리 역동학이다(정신분석학에서 상세하게 설명).

심리학이라는 단어인 psycho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그리스어로 바람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밝히고 있다(Basch, 1985), 그리스어로 psych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용어로써 이 낱말이 psych 즉 심리라는 뜻으로 그 말 속에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고 시카고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가 노트를 하고 있다.

학자들은 과거부터 뇌가 마음(자아)인가? 혹은 자아()와 뇌가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가? 등에 대한 논란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뇌에 저장된 정보들을 수집하고 저장하고 통합하고 컨트롤 하는 것이 자아라고 보는 학자들과 뇌 자체가 마음이라고 보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그것이다. 전자를 일원론(뇌와 마음을 분리시킬 수 없다)이라고 부르고 후자는 이원론(뇌와 마음은 따로 분리되어야 한다)라고 부른다.

이원론자 들은 뇌와 마음(자아)의 작동을 양초와 촛불에 비유를 하고 있다. 양초를 만들어 놓아도 양초의 불을 붙이지 않으면 불꽃을 낼 수가 없다. 촛불은 마음(자아, )으로 고체와 액체를 거쳐서 기체로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마음 역시 뇌에서 수집하고 연결된 정보들을 모으고 회상하고 계획하고 컨트롤하고 상상을 하는 기능을 자아가 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양초는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다. 컴퓨터로 로봇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기계일 뿐 전기가 나가버리면 인간 로봇은 고철 덩어리에 불과 하다고 주장을 한다. 인간 로봇을 만들어도 스스로 생각하고 감정을 연결하고 계획을 짜고 사랑을 스스로 느끼는 인간의 마음 즉 자아를 가질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을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의 세계적인 수학자 로저 펜로스 경이 말을 하고 있다.

일원론이냐 이원론이냐 하는 논쟁은 철학에서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논쟁과 같다고 주장을 한다. 달걀인 알에서 병아리가 나온다. 그런데 그 달걀의 알은 닭이 낳아야 한다. 고로 닭이 있어야 하는 것은 그 닭을 태어나게 한 달걀이 있어야 하고 그 달걀을 누가 낳았느냐? 라는 끝없이 질문으로 연결되어져서 거기에는 대답이 없게 된다. 20세기 후반기로 들어오면서 이 논쟁은 어느 쪽이 먼저가 아니고 양쪽에서 연구와 접근이 서로 통합되어 뇌와 자아를 마음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다시 심리학의 기원으로 되돌아가 보자. 인간의 학문 중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학문이 인간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하늘에 대한 연구라고 주장 한다(McBurney,1983). 고대 그리스 시대에 점성학과 그리고 신라 시대에 첨성대(별의 연구)를 보라, 그리스 어로 별은 astro 라고 불리우는데 여기에 학문 logy라는 말이 붙어서 astrology로써 점성학, 점성술로 별자리를 보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언했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 했을 때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라는 기록들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천문학은 19세기에 들어와서 과학의 등장으로 astro + meter라는 말이 합쳐져서 astrometer라는 천문 관측학이 되었고 여기에 분류, 기준, 법칙이라는 말인 nom이 합쳐져서 astronomy인 천문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정작 사람의 마음에 대한 연구는 가장 늦게 발달을 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 가장 늦게 가장 멀리 있는 것이 가장 일찍 발달을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뇌와 신체의 연결된 기능들이 발과 손이 뇌에서 가장 가까운 부분에 위치해 있고 눈, , 입 등의 기능들이 뇌의 중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일치된다는 점도 신비롭지 않는가?

똑 같은 맥락으로 몇 개월 전에 미국 우주항공 국 즉 나사(NASA)에서 수십 년 전에 발사한 우주 탐사 로켓인 뉴호라이즌 호가 명왕성 근처에서 찍은 사진들과 지구처럼 빛을 발하는 생명체의 존재 가능한 위성을 전송을 해서 그 사진의 분석 결과 5개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했다는 신문의 보도가 있었다(와우스포츠, 2015, 8, 6). 이와 같은 우주 탐험의 시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인간의 마음, 자아를 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5개의 감정을 의인화 시켜서 만든 영상 영화 “Inside out”이라는 영화가 등장(2015, 7 23)해서 이제 우리의 마음, 자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심리학 즉 심리 과학은 단일의 학문이 아니다. 심리학은 철학으로써 이미 고대 그리스그리스 시대부터 마음에 대한 호기심과 연구가 시작이 되었다. 이후에 수 많은 철학자들이 마음이 머리에 있다. 혹은 가슴에 있다 라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난무를 했었다. 중세를 거치면서 근대에 이르러서 생물학, 전기 이론, 물리학 등의 과학이 등장하면서부터 생물학의 일부로써 그리고 물리학의 일부로써 함께 해 오다가 19세기 말에 철학, 생물학 그리고 물리학으로부터 독립을 해서 순수한 심리과학이 실험실 안에서 탄생하게 된다. 요약을 하면 심리 과학은 철학, 생물학, 물리학으로부터 탄생을 했다는 것을 먼저 알고 다음과 같은 심리학의 탄생을 위한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Rundin, 1985).

1) 철학으로부터 심리학

그리스 시대

 그리스 시대는 B.C 500– A.D 500년 사이의 천 년을 그리스, 로마 시대로 고대라고 부른다. 그리스 시대에는 학문, 문화가 꽃피웠던 시대로 모든 학문의 시초가 그리스시대로 거슬러올라 간다(Rundin, 1985).

아리스토텔레스(B.C 384 - 322 B.C)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 박사로써 거의 모든 학문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박식한 사람이었다. 그의 저서 에니마(The Anima)에서 그는 인간의 마음을 5가지의 위계로써 구성되어져 있다고 썼다. 식물적인 마음은 식물들도 생명체를 가진 것으로 번식, 정받이, 후손을 퍼뜨리는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그 다음에 감각과 지각 기능을 가진 동물들의 마음으로 그리고 그 다음의 단계에서는 접촉의 기능을 가진 내면의 요원으로서의 기능으로 동물들의 마음을 들었다. 그 다음에 5감각을 가지고 상상을 하는 고등동물들 영장류 등의 동물들 원숭이 고릴라 등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고하는 마음, 생각, 추론하고 발명, 발견을 하는 마음으로 추상적이고 이성적인 마음을 들었다.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마음에 대한 학문적인 기술은 20세기 초반의 심리학에 대한 기술과 별다른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심리학으로의 첫 시작이 흥미롭지 않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몸과 마음 즉 뇌와 마음을 분리시킬 수 없다는 주장으로 일원론의 창시자이다. 뇌가 마음이고 마음이 뇌임으로 따로 분리할 수 없다는 최초의 일원론을 주장한 사람이다.

중세 시대

중세 시대는 A.D 500 - 1500년까지의 밀레니움(1000년 이라는 영어에서 온 말)를 중세라고 부르는데 로마 제국의 말년에 기독교의 확고한 바탕 위에서 인간의 욕구들의 억압, 금욕, 금기, 절제로 인해서 인간의 욕망과 상상들의 제한으로 예술적 생산물이 불모지가 된 것을 역사가들은 중세를 암흑 시대 즉 dark aged 라고 부른다. 종교, 미신, 무시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로 영혼을 중시한 반면에 신체는 욕구, 욕망의 근원으로 타락과 부패의 온상으로 보고 멸시, 천대를 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마음의 연구들은 기독교의 영혼으로 대체 되어져서 심리학의 발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종교 지도자들

성 아구스투스(A.D. 354 – 430)  토마스 아퀴나스(1225 – 1274)

 성 아구스투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 신학 대전을 통해서 그들은 기독교의 원리로써 몸과 마음을 따로 분리 시켜서 마음을 영혼으로 대체시켰다. 태초에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영혼을 부여해서 인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천당(기독교인)으로 혹은 지옥(비 기독교인)으로 간다는 논리를 펴서 마음을 교화하고 정화하는 교리로써 욕구의 억제, 금욕, 금기, 억압을 동원해서 인간의 상상의 영역을 하느님, 천사, 악마, 귀신 등으로 채색을 해 버렸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1492) 하고 서양과 동양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지구 구석구석이 탐색되어지면서 14세기, 15세기, 16세기의 르네쌍스와 봉건주의 시대와 절대 군주 시대를 거치면서 문예 부흥과 종교 계획 등으로 미신, 무지에서 깨어나서 과학, 이성의 시대의 등장으로 연결되어지는 18세기-19세기에 들어오면서 심리과학의 탄생이 싹을 띄우게 된다.

현대 시대

 역사가들은 1500 - 1900년까지를 근세시대로 1900년 이후를 현대시대, 1950년 이후를 후기 현대(postmoder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데카르트(1596 – 1650)

 프랑스의 철학자로써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으로써 기술을 했다. 어떻게 뭄과 마음이 서로 관계를 하는가?에 의문을 가지고 접근을 했다.그는 그 시대의 생리학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근육들, 신경들 그리고 다른 생물학적인 구조들의 움직임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몸을 기계에 유추를 해서 뇌가 마음과 몸을 연결되는 중간 징금 다리로 보았다. 동물들은 반사작용들과 본능들을 가진 단지 기계들로 보았다. 신경 조직들이 마음을 몸으로부터 전달하고 전달을 받는 물의 호스로 생각했다. 해부학과 생리학을 철학에 접목을 시킨 점과 그리고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으로 기능적인 면을 강조한 공로로 인정을 받고 있다.

 고대와 중세까지는 학문으로써 심리학은 아직 철학의 일부분으로 독립되어지지 못하고 좀 더 긴 과학의 등장으로 인한 여정을 기다려야 했다. 14세기, 15세기, 16세기 르네쌍스를 통한 인간성 회복과 봉건주의 시대의 청산으로 연결된 17세기의 절대군주 시대의 통합된 국가와 안정된 사회 질서 유지를 거치면서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 낭만주의 시대로써 과학의 등장을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심리 과학의 등장이 싹을 틔우게 된다. 과학으로써의 심리학 즉 심리 과학의 등장은 제 2 로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