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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37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B씨

증세: 숨이 막혀 질식해서 죽을 것만 같다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음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공황 장애, 불안 장애

치료 기간: 첫 달에는 1주일에 2회씩 1회 당 2시간씩 분석치료를 받다가 3개월 이후부터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1년 6동안 치료를 받고 있었음-- 첫 1년 동안의 치료의 과정으로 치료Ⅰ에서 소개

아직도 불안이 약 10%정도 남아 있다고 다시 6개월더 치료를 받게 되었음--두 번째 6개월의 치료의 과정으로 치료 Ⅱ로써 소개되고 있다. 이 때의 특징은 위염, 복통, 심장이 벌떡거림으로 죽음 공포를 호소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후 6개월간 치료를 더 받으면서 폐쇄 공포증이 등장하고 심장이 갑자기 뛰거나 머리가 하얗게 되는 증세, 위가 자주 위염이 오는 증세는 이후에 거의 사라졌다.

세 번째 6개월 더 치료를 받으면서 이번에는 목 근육통과 두통으로 인한 죽음불안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죽음 불안의 근원을 찾는데 한몫을 한 것은 B씨가 보고한 꿈들이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해서 도움을 주었다.

치료의 결과: 총 1년 6개월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세 번째 목 근육통과 두통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애통과 분노를 다루면서 애도의 과정이 마무리 되면서사라졌다.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고 증세가 거의 사라짐에 따라서 치료를 종결하기로 했음

 

치료의 과정  

 B씨는 1년 동안 치료를 받아서 공황장애는 치료를 받으면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고 위염과 복통과 심장이 벌떡거리는 증세는 이후에 거의 사라졌으나 아직도 조그만 건강 상의 이상에도 혹시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끝임없는 죽음 불안 때문에 치료는 6개월 더 길어졌다. 원인을 찾아내어서 그것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 동안 직장에서 동료들의 상가에 문상을 갔을 때 상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 든지, 어떤 특정 음식은 건강에 위험하다고 피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런 죽음의 공포에 대한 근원을 찾아나가는데 B씨의 꿈들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이 죽음불안으로 인한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B씨가 꿈을 보고 했다. 그 꿈에서 "어느 초상집에 갔는데 영정 사진이 두 개가 있었고 하나는 나이 많은 사람의 영정 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젊은 소녀의 영정 사진이었는데 그 영정 사진에서 여자 귀신이 B씨를 따라오는데 놀래서 죽으라고 도망을 쳤다"는 꿈 내용이었다. 이 꿈을 연상하면서 B씨는 중학교 2학년 쯤에 할머니를 따라서 인근에 있는 절에 갔는데 그 절에 49재를 지내는 어떤 가족이 소녀의 영정 사진을 놓고 불경을 드리는 모습을 보고 그 소녀의 얼굴이 예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과 사귀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 혹시 그 영정 사진의 귀신이 자신을 쫒아다니면서 괴롭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다가 옆 크다란 소나무에 이마를 부디쳐서 다친 어린 시절의 회상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죽은 소녀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끄집어 내면서 죽음 불안의 원천을 찾아내어 다루어나갈 수 있었다. 이후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신체적 고통을 스스로 들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여 고통을 스스로 받았던 것과 연결 시켜서 죽음 불안을 끝없이 토해내게 했다. 이러한 죽음 불안에 대한 자연스러운 논의가 신체적 증세를 감소시켜감을 느낄 수 있었다. B씨는 점차로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빈도수가 줄어들어 갔다. 죽음 불안에 대한 하소연도 줄어들어갔다.

 꿈에서 나타난 어린 시절에 죽음의 공포에 대한 기억의 회상으로 연결 시켜 어린 시절의 상처 경험으로 되돌아가서 어린 시절에 상처를 받은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4학년 경에 먼 친척되는 동네 어른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시체를 덮어 놓은 사고 현장의 옆을 지나가면서 죽음의 현장을 보았고 그것을 두려워했던 기억을 회상해 냈다. 또 중학교 3한년 쯤에 때 사촌 형님이 뇌를 다쳐서 6개월 동안 죽어가는 모습 즉 수염이 더부룩하고 해골처럼 말라서 죽어가던 모습을 회상해 냈다. 이후에 이런 마음 속의 불안은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못했고 치료자에게 오기전까지 부인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을 알 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죽음에 대한 불안을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억압해 두었던 것이 중년기에 들어가면서 중년기 위기를 겪어면서 1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2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그리고 1년 전에 처가 외 조부의 죽음에서 옛날의 죽음의 공포가 억압이 풀리면서 자아가 연약해진 틈을 따서 용암처럼 분출되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B씨는 특히 어린 시절에 할머니가 초상 집에 절대로 가지 말 게 했고, 죽음의 이야기를 입밖에 꺼집어 내기 못하게 했다고 털어 놓았다. 가족들 중에서도 아무도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했다. 가족들에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금기시되어 왔어던 것이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토해내면서 마음대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와 위에서 밝혀진 죽음의 상처 이벤트들을 치료 과정에서 다시 재연함으로써 마음 속에 억눌려있는 죽음 공포를 직면하게 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나타나는 빈도수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빈도수가 현져하게 줄어들어가고 있음을 B씨 자신의 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어느날 B씨는 또 다시 꿈을 보고 했다. 그 꿈의 내용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또 어머니에게 할머니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의 꿈이었다. 그 꿈에서 B 씨는 아버지와 할머니가가 모두 돌아가셨지만 지금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저서 이제는 안심이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 꿈의 연상에서 B 씨는 이제 할머니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것임을 이야기하면서 할머니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 꿈이 주는 메시지에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B씨의 아버지는 B씨가 어린 시절에 술과 도박으로 가족들을 괴롭히면서 가족들의 원성을 많이 들었던 분으로 기억하고 있고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우리 가족의 대들보로써 할머니를 동일시하려고 했고 아버지는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B씨 가족에게 끼친 영향력을 분석하면서 B씨가 할머니를 닮아서 많은 미신을 가지고 있고 더구나 죽음불안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게 되면서 B씨 자신의 가족의 갈등의 근원은 할머니였음을 알 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아버지에대한 경멸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늘 할머니와 싸우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입에 "어메(어머니의 사투리)가 죽어야 우리 가족이 산다" "어메는 빨리 뒤져야 한다"(죽어야 한다의 비속어)고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B씨는 왜 아버지가 천박한 말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이해가 된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가정의 경제권이나 독립적인 권한을 일제 주지 않았다. 할머니가 권한을 모두 손에 쥐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린 아이를 다루듯이 의존하게 했고 결정권을 주지 않았다. 40대를 지나서 50대가 되어도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가장으로서 권한을 주지 않았다. 이제 왜 아버지가 끊임없이 술과 도박으로 세월을 허송하다가 50대 후반에 젊은 나이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는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이론적 근거

 아버지에 대한 애도의 과정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삶다운 삶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아들을 5명이나 둔 가장으로써 대접을 할머니로부터 받지 못했고 자식들 보는 앞에서 할머니가 아버지를 비하하는 모습을 자주 보임으로써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게 했던 장본인이 바로 할머니임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으로써 할머니에게 대항하고 도전하고 할머니를 처벌한 것임을 B씨가 알 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의식적으로 계획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에게 도전으로 항의로써 할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술과 도박으로 할머니르 처벌하고 복수를 한 것이 결국은 아버지 자신의 조숙한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B 씨는 눈물로써 아버지에게 이별을 고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하세요. 아버지의 속 마음을 모르고 저는 아버지를 경멸하고 아버지를 비하하고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문제점들을 간파하고 있었고 무엇이 문제해결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왜 그런 부정적 방법으로 가족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고 결국은 스스로 자해, 자상으로 자신을 다치게 했습니까? 불쌍한 우리 아버지" B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를 애도했다.

 아버지의 애도 문제가 다시 어머니 문제로 연결 되었다. B씨의 어머니는 정말로 억울한 삶을 살았다고 B씨가 애통해 했다.어머니는 시집을 와서 자신의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조문이나 문상을 가지 못했다고 했다. 할머니가 보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후에 외삼촌이 (어머니의 친 남동생)이 아버지(외삼촌의 처남)에게 "누나를 시집살이를 너무 시킨다"고 아버지와 싸운 과거의 기억을 회상했다. 할머니는 빨래와 식사일을 일체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를 식모 부리듯이 일을 시켰고 어머니는 귀가 약간 들리지 않는다는 약점 때문에 아버지가 초혼으로 첫 자녀를 출산하다가 부인이 사망하자 두 번째 부인으로 아버지에게 시집을 왔고 이후에 5명의 아들을 낳았으나 정작 양육자로 어머니 역할을 한 것은 할머니였다고 했다. 지금도 B 씨의 형제들은 할머니를 어머니처럼 따르고 존경을 하지만 어머니는 존경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한번도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가 자신이 양육한 자식들 즉 아버지와 삼촌을 알콜 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막내 삼촌과 강박증과 신경증 증세로 많이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을 B씨는 알고 있었다. 즉 자기 자식도 제대로 양육하지 못했으면서도 손자 5명을 할머니가 양육을 해서 지금도 B 씨의 형제들은 제일 큰 형님은 대학을 중퇴하고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나 둘 째 형님과 두 명의 남동생들은 결혼도 못하고 사는 것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겨우 B씨만 대학을 졸업하고 교직에 교사로 종사해서 제일 출세한 경우라고 했다. B씨는 이제 왜 자신의 형제들이 고통 속에 사는 것이 힘들어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의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B씨의 기억 회상으로 B 씨가 5살 때 쯤에까지 매번 추석과 설에는 떡을 해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모두 첫 부인의 집으로 위문을 갔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아버지는 참석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등살에 아버지의 첫 부인에게 떡을 해서 자식들을 대동하고 첫 부인에게 빌면서 저주를 하지 말라고 복을 내려달라고 적어도 약 10년 동안 할머니의 명령으로 그 가족에게 위문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 내면서 어머니의 삶에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조상의 선산에 좋은 묘지가 있다는 풍수 전문가의 말에 할머니가 자신이 가겠다고 하자 할머니를 그곳에 모시지 않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으나 정작 아버지가 죽자 할머니는 그 묘소를 할머니 자신이 그곳에 가기 위해서 아들이 뇌출혈으로 인사불성이 되어 며칠을 지내다가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에게 유언으로 자신이 죽으면 첫째 부인 묘소 옆에 묻어달라고 했다고 해서 아버지는 죽은 첫 부인의 묘소 옆에 묻혔고 할머니가 그 묘소에 묻히게 되었다고 했다. B 씨는 할머니의 전달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석치료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점은 왜 아버지가 첫 부인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아버지는 떡을 해서 첫 부인에게 위문을 하는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동참하지 않았다) 30년을 같이 살아온 부인에게 마지막 떠나면서 첫 부인 옆에 묻어달라는 말을 하게 되면 정작 자신의 부인인 B씨의 어머니는 무엇이되겠는가!를 분석하면서 이말을 할머니가 지어낸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제 죽게 되면 정작 아버지 옆에 묻히게 되면 아버지의 첫 부인 옆에 두 명의 부인이 나란히 묻히게 되어 죽어서도 두 명의 부인의 질투와 미움에 시달리게 되고 어머니는 이제 묻힐 곳이 할머니 옆에 밖에 없는데 정작 살아서도 할머니 노예처럼 일을 한 후에 죽어서도 할머니 옆에 영구적으로 묻힌다는 것을 B씨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이 할머니의 농간이었다는 것을 알 게 되면서 어머니에 대한 통곡을 했다. "불쌍한 우리 어머니, 살아서도 그렇게 식모처럼 살아왔고 일하는 머슴처럼 일만해온 어머니, 죽게 되면 묻힌 곳도 없게 된 불쌍한 우리 어머님" B씨는 통곡을 했다. 어머니는 이제 몸도 골병이 들어서 정작 노후에 편안하게 지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 때 어머니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핑계로 할머니가 어머니를 꼬집어서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고 B씨가 할머니에게 대들면서 할머니에게 야단을 친 적이 몇 년 전의 일이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평생동안 시집와서 할머니에게 처벌로 몸이 꼬집히는 수모를 당한 것을 B씨는 어머니의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을 수 없이 보아왔다고 통곡을 했다.

 위의 두 문제를 다루면서 B씨가 한 달 동안 어깨 통증과 머리 두통이 사라졌다. 약 1달 동안 B씨는 한의사에게 가서 침도 맞고 마사지도 받고 여러 모로 노력을 했으나 없어지지 않았던 목에 근육통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에 신기해 했다. 부모님에 대한 애도를 다루면서 마음 속에 쌓인 심리적 고통이 사라진 것이었다.

 B 씨는 어느날 또 다른 꿈을 보고 했다. 꿈에 B씨의 형수가 자살 하려는 것을 말리면서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스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왜 형수가 그렇게 못하는가? 라고 말리는 꿈이었다. 이꿈에서 B씨는 평소에 형수와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형수에게 자신의 고통을 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자신의 마음 속에 금기시 해온 고통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즉 형수처럼 가깝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다. 이 꿈이 전해는 메시지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B씨는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암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3년 동안 지켜 보면서 자신의 죽음이 아닌 할아버지의 죽음의 과정을 자신의 죽음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을 분석에서 알 게 되었고 그 결과 심장의 벌떡거리는 증세와 복통(할아버지는 위암으로 별세)이 사라졌다. 그러나 정작 B 씨 자신의 죽음 즉 B씨 자신의 자아가 본 죽음을 다루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B씨 자신의 자아가 본 죽음에 대한 불안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이것을 다시 재연하기 시작했다. 내면 속에 감추어져 숨겨온 어린 시절에 공포에 찌들린 자아를 끄집어 내어서 죽음 불안과 공포등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였다. 이렇게 불안에 대한 내면의 공포를 이야기를 하고 하소연하는 과정에서 치료 6개월이 거의 다가오게 되었다.

 

치료의 결과

 B씨는 총 1년 6개월 동안 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처음에 등장했던 공황 장애는 치료가 시작되면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이후에 위염과 복통과 심장의 쿵꽝거림에 놀래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죽음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6개월 그리고 목 근육에 통증과 머리에 두통을 호소하면서 좀처럼 B씨의 불안증은 해소되어지지 않았다. 치료의 과정에서 B씨는 초반기부터 꿈을 많이 보고를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보고하는 꿈이 돌파구 역할을 해주었다. 어린 시절에 기억을 꿈이 끄집어내어 주었다. 그 상처들을 다루면서 하나씩 B씨의 불안증은 해소되어져 갔다.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대한 애도와 살아계시지만 불평불만 한마디 없이 살아온 살아계신 어머니에 대한 연민은 살아 생전에 효심으로 연결되면서 어머니에 한을 대신해서 애통에 하면서 B씨의 신체즉 증세들을 하나씩 사라져갔다. B씨는 최근에 고향 집을 다녀오거나 처갓집에서 처제의 결혼 준비 등의 부탁을 받고 준비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과거에는 몸이 피곤하고 멀리 있는 고향을 운전을 해서 8시간 정도 달리고 나면 피곤해서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한 피곤함이 사라졌고 이제는 몸이 건강해지고 스트레스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고 했다.

 B씨이 자아 구조는 연약해서 모든 외부적인 스트레스를 마음이 몸을 대리해서 자아로써 다루지 못하고 몸 그 자체로써 다루어왔기 때문에 조그만 외부적 스트레스에도 몸이 아프거나 몸이 비명을 질렀던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면에 쌓인 긴장과 적대 감정이 방출되어지고 자아가 바로 서고 강해지면서 자신감을 얻어가게 되었고 이제 외형적 스트레스를 미리미리 예측해서 제거해가면서 내면에 긴장이 쌓이지 않게 되었고 그 결과 신체적 증세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긴장이 몸에 쌓이지 않게 자아가 대신해서 긴장들을 컨트롤을 할 수 있게 되어감에 따라서 미래에 대해서 희망이 생긴다고 스스로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 1년 6개월을 즐겁게 고마움으로 종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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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종결 후에 2년이 지나갔다.

 2010년 4월 19일 저녁 8시 50분에 치료자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통화 시간은 05분 08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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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치료자): 여보 세요.

P(xxx): 선생님 저 아시겠습니까? 2년 전에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았던 XXX 입니다.

T: 내 기억이 납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P: 선생님은 과연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명의(名醫) 십니다.

T: 고맙습니다.

P: 저는 치료 종결 이후 2년 동안 공황 장애는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 당시에 제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증세들도 사라졌습니다. 약간 불안 함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정도의 불안으로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T: 축하합니다.

P: 선생님에게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선생님에게 술 한잔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T: 그 때 태어난 따님은 잘 자라고 있나요?

P: 예, 벌써 4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새로 청약한 아파트에 들어가게 됩니다.

T: 전화 주어서 고맙습니다.

P: 선생님이 책을 쓰신다고 늘 말을 해 왔었는데 그 책이 지금 나왔습니까?

T: 그 후에 정리된 내용들을 "정신분석"이라는 홈페이지를 한 개 만들어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제본된 책은 아직 쓰지 않고 있습니다.

P: 선생님의 책이 나오면 꼭 연락 주세요.

T: 그렇게 하겠습니다.

P: 선생님 만수무강하십시요. 또 시간 있으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T: 고맙습니다.

 

치료 종결 후에 2년이 지나갔다. 그는 이제 공황 장애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을 확인을 할 수 있었다. 2년 동안에 불안증의 재발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치료자는 그 당시에 그가 고통스러워하면서 치료자에게 왔던 초반기 치료 시절을 회상하면서 삶에서 정신 의학을 공부한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